11월의 나목 _ 김미진

이별은 오래된 책갈피처럼

by 별꽃서리

11월의 나목


김미진


바람이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아침

굳은 침묵으로 서 있던 나무들이

서로의 이름을 지우듯 잎을 흩날린다

한 장, 또 한 장

땅 위에 포개지는 것은

지나온 계절의 그림자일까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의 무늬일까

발끝에 와닿은 낙엽 한 줌

조심스레 밟아

사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언가를 떠나보낸 자만이

들을 수 있는 얇은 울음은

햇살에 닿아 짧아지고

이별은 오래된 책갈피처럼 누렇게 접혀

가을의 마지막 문장 속에 끼어 있다

11월의 잎사귀들은

흩어지며 비로소 하나의 길이 된다

그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내 안의 오래된 상처도

조용히 낙엽처럼 비워져 간다

잔잔한 바람의 바이올린 선율에

겨울의 이마가 가까워지고

마침내 앙상하게 남은 너를 이해한다

떨어지는 것들은

저마다 자신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빛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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