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시를 입다

구수산 도서관 시화전

by 별꽃서리

봄, 시를 입다

- 구수산 도서관 시화전



김미진


영남문학 주최로 열리는 제2회 <봄, 시를 입다> 시화전이 오전 11시, 구수산 도서관(대구 북구 대천로 21)(2026. 4. 1~2026. 4. 15까지)에서 막을 올렸다. 북구청 시화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자리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처음처럼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는 길목엔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등 봄꽃이 한창이다. 봄이라는 계절이 그렇듯, 같은 풍경이라도 늘 다른 빛을 띠고, 같은 만남이라도 다시 마주하면 조금 더 깊어진다.


시간이 되어가자 작품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찾아가고, 허전했던 공간은 시의 온도로 차츰 채워진다. 유진서 편집장님과 황우연 대표님, 피송열 선생님께서 설치를 맡아 묵묵히 움직였다. 작품의 위치와 시와 시 사이의 간격까지 고려하는 모습에서 시를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그 곁에서 선뜻 나서지 못한 채 뒤에 서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며,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움직이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설렘으로 벅차올랐다.


이번 시화전에는 영남문학의 선생님들 열다섯 분이 참여했다. 김경희. 김동관. 김미경. 김산봉. 김정곤. 민병금. 박나현. 박후형. 이순득. 임복희. 전남원. 전영귀. 조은자. 피송열. 황우연


그 이름들을 마음속으로 하나씩 불러보며, 각각의 이름 뒤에 쌓아 올린 시간과 문장의 무게를 느꼈다. 전시장 이젤 위에 아크릴로 제작해 세워진 선생님들의 시들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장사현 이사장님이 도착하시기 전, 유진서 편집장님의 사회로 즉석 시 낭독회가 열렸다. 각자 자신의 시가 걸린 자리에 서서 조용히 낭독에 참여했다. 시의 언어들이 잔잔한 숨결 속에 흘러나왔다. 그 순간, 시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서로 다른 목소리 속에 '시'라는 공통된 진심이 있었다. 그 소리들 사이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나를 감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이 조금 더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구미에서 오신 박나현 선생님과 이순득 선생님, 그리고 함께 오신 선생님께서 준비해 온 케이크와 예쁜 꽃바구니는 전시장 안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마음씀이 공간을 밝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오프닝을 모두 마친 뒤, 우리는 팔공산 가산산성 아래 자리한 권병엽 선생님의 집으로 향했다. 도시의 소음에서 멀어지자 마음은 한결 편해지고, 산 아래 다다르자 공기부터가 달라졌다.


권병엽 선생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닭백숙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끓여낸 환대였고, 손님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그 밥상 앞에서 나는 쉽게 자리에 앉지 못했다. 너무도 정성스럽게 차려진 성찬 앞에서 괜스레 몸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구미에서 오신 박나현 선생님께서 권해주시는 손길에 따라 자리에 앉아 한 숟가락을 뜨는 순간, 그 정성이 온몸으로 번졌다. 국물 한 모금에 담긴 따뜻함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 마법처럼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청송에 사시는 김동관 선생님께서는 청송사과를 한 박스 가지고 오셨다. 빛깔이 빨갛고 보기에도 탐스런 사과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귀했지만, 더 귀한 것은 그것을 나누는 시인의 마음이었다. 권병엽 선생님께서는 그 사과를 다시 우리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따뜻한 온기가 또 다른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그렇게 작은 나눔이 도미노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울림을 주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모든 것이 ‘어머니의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하지 않고, 조건 없이 내어주는 어머니의 마음. 그 따뜻함이 그리움의 빈자리를 가득 웠다.


시간은 늘 그렇듯 빠르게 흘러간다. 함께하는 시간이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신대원 선생님의 또 다른 일정으로 인해, 전남원 선생님과 나는 먼저 자리를 떠야 했다. 마당으로 나서자, 모두가 함께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아쉬움을 한가득 안고 그 자리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순간,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 모습이 오래도록 두 눈에 남았다.


차에 올라 돌아오는 길, 스피커에서는 호소력 짙은 이재성의 <그 집앞>이 흘러나왔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익숙한 멜로디와 목소리가 기억과 겹쳐지며, 마음 깊은 곳을 툭, 건드린다. 노래 속 그리움이 풍경과 맞닿아, 내면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서서히 차오른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꽃들의 진풍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권병엽 선생님 집 앞에서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영남문학 선생님들, 그 고귀한 얼굴들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눈가가 촉촉해진다. 아마도, 봄꽃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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