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설렘과 불안함

by Dubu

오늘은 8월 30일, 중국 입국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가장 속을 썩였던 비자 문제도 (임시방편적이지만) 거의 해결됐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시작 앞에 서있다. 조금 솔직해지자면, 설레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또다시 서울을 떠나 먼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앞길을 막연히 나 혼자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불현듯 2019년 1월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멋모르고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환경과 정서가 전혀 다른 곳에 캐리어 하나 끌고 발걸음을 옮기던 만 19세의 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마냥 해맑았던 것 같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저 해맑은 소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잘 버텼다고 어깨를 토닥여줄까, 아니면 왜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냐고 아연실색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 고생을 하고도 또다시 짐을 싸 떠난 내 모습에 놀라지 않을까 싶다.


모든 일은 시작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시작이 반이다 (Well begun is half)'


마치 클리셰처럼 너무나 많은 곳에서 사용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간과하기 쉬운 속담이다. 그 사전적 정의는 '시작이 어려워 보일지라도 일단 시작하면 끝을 맺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 뜻에서 '끝'이라는 마무리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이 말의 진정한 저의는 '시작'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시작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들, 하물며 실수들 역시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작점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물며 삶의 첫 지점에도 그 '시작'이 존재한다.


하지만 시작은 여전히 나에게 언제나 어렵고, 불안한 존재이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면, 시작선 앞에 서있는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설렘과 불안함이 공존했다. 그리고 이 오묘한 감정의 발현이 시작이라는 첫 도미노를 쓰러뜨리기 어렵게 만든다. 사실, 내 유학생활을 돌이켜보면 항상 그러했다. 아니, 비단 유학생활뿐만 아니라, 여행을 갈 때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사귀기 시작했을 때도, 다른 나라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도 내 마음속은 항상 그러했다.


모든 일은 불확실하다.

시작이라는 출발선 앞에서 우리 (아니, 적어도 나)는 그 앞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무지함에서 오는 불안감과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애석하게도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겁쟁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리하여 수많은 '시작'을 놓쳐버리고 만다.


사실 무책임할 수 있지만, 내 앞 길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사실 우리가 예언가도 아니거니와,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누군가 나에게 몇 년 후의 일을 상세히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 어떤 예언도 정확한 내 삶을 들여다봐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항상 두렵고, 또 무섭다. 오죽하면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점을 보고 사주를 보겠는가.


하지만 이런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나의 해외생활은 언제나 빛 한 줄이 들어오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경험하고 나아갔다. 만약 좋은 결과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항상 그런 결과가 도출되진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일들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 (때에 따라서 차악)의 결과를 나 자신에게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그다음의 흐름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무서웠고, 여전히 무섭지만, 그게 내 삶인걸.


이번 중국에서의 긴 여정 역시, 나 조자도 내 앞길이 꽃길인지 가시발길일지 알지 못한다. 논문이 생각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논문을 잘 써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친구를 많이 사귈 수도 있고 (근데 그럴 일 없을 듯..), 친구를 많이 못 사귈 수도 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맨몸으로 있는 힘껏 부딪혀 최선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길면 8개월이 넘을 긴 여정이 시작된다. 아까도 말했듯이 시작이 반이라지만, 여전히 두렵다.


그러나 이제 피하기엔 늦었다. 부딪히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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