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을 갓생

by Dubu

최근일이다. 독서모임에서 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분이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대해 말하며,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는 정책은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다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거기에 유명해지고 싶어지고, 권력이라 불리는 위치 에너지를 가지고 싶은 욕망까지 있다. 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인간에게 내재된 감정이므로 부인하기가 어렵다.


다만 본능과 욕망을 따르는 삶이 어떤가에 대해 생각은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는 수많은 광고와 sns가 범람하는 시대다. 광고의 매체가 텔레비전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우리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광고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욕망하라는 것이다.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것이 광고의 주요 메시지다.


어디 광고뿐이겠는가? 강연가라고 불리는 미디어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라고 전파한다. 때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단,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라고 좀 더 있어 보이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매슬로우 인간 욕구의 최상단에 있는 자아실현욕구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로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삶도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는 자신의 삶과 비교하면서 때론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나 역시 아직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욕구를 충족했을 때 그 기쁨이 잠시였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욕구 충족을 위해 사막을 헤매는 나를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과연 욕구의 최종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 단계에 이르면 정말 더 이상의 욕구는 없을지 사뭇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의 문제는 자아실현을 아직 못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내 마음에 있지 않나 싶다. 욕구가 끝이 없다는 것은 채워지는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에 입에 음식을 넣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심리적 허기로 인해 불필요한 살만 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나마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근 세 달간 소위 요즘말로 갓생을 살았다.

갓생이 대체 뭘까

아래는 검색창에 '갓생 사는 법'을 검색하면 나오는 몇 가지 항목들이 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기

-아침운동하기

-명상하기

-출근 전 자기계발하기

-간단한 요리하기

-음악, 영화등으로 지친 마음 돌보기

-퇴근 후 헬스장에서 운동하기


음 이렇게 살면 갓생이라고? 한 번 해보지 뭐

매일 5시 30분에 일어나서 헬스장에 가 근력운동 한 시간을 했다. 집에 오면 요거트를 먹고 곧바로 출근해서 열일하고 퇴근하면 스터디를 했다. 갓생이지만 자아실현 충족은 이루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취감이 맞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 불안해하는 모습을 마주하기 무서워 무작정 갓생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닐까. 5시 30분에 죽어도 못 일어날 나는 이번 생애는 하지 못하는 그런 것일 줄 알았는데.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5시 30분 기상 후 운동을 다녀와 적정 칼로리 음식을 섭취하고 출근길 버스를 탔다. 약국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8시 20분이었다. 청소를 하고 약통에 시럽을 미리 채우면서 계속해서 시간을 체크했다. 약사님 오시기 전에 아침 루틴을 모두 마무리하고 싶었다. 계획했던 것이 하나라도 어긋나거나 9시 전 손님이 오면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었다. 약사님께서는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며 무슨 일 있냐고까지 물어봤다.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뭐가 대체 문제지

왜 이리 예민해졌지.

갓생

막연한 이 신조어에 끌려서 열심히 살아보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성취감이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갓생의 정의를 찾아보려 했고, 국립 국어원 같은 곳에서 공식적으로 내린 정의는 아니지만 가장 납득이 가는 설명을 찾아냈다.


스스로를 컨트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갓생입니다
갓생 살기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100%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일상에 대한 만족감, 성취감을 느끼면 충분합니다.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것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


이건 나도 할 만하겠는데?

일 그만둔 지 삼일이 지났고 갓생 살아 볼 최적의 상항이 이루어졌지만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던 나는 드디어 구미가 당겼다. 기상시간은 동일하게! 독서와 영어공부를 시작해 보자!


예상과 다르게 시작은 굉장히 수월했다. 알람이 5시 20분부터 10분 단위로 울리면서 미라클 모닝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멈추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는 잠깐 휴식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나는 매일 5시 20분에 일어난다. 일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생체 리듬이 꼭 5시 20분이면 눈을 뜨게 한다. 그럼 그날 그날 해야 할 것들을 한다.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이랑 복근운동을 하고 아침으로 사과를 간단히 먹고 카페로 곧장 가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한다. 할 수 있다면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감사일기 쓰기, 그것마저 이따금 빼먹고 있다. 그러면 어떠하리 내 마음 가는 대로 아침을 쓰고 여유롭게 시작하는 아침은 하루 내내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물처럼 주었다. 무대책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아, 나 좀 멋진 듯!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조금씩 루틴을 조정하기도 하고, 공부계획, 운동계획 등을 세워 추가하며 나의 하루를 디자인해 갔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살아가고 있고, 나의 계획들을 실행하고 있다는 면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갓생을 살고 있다.


내가 정한 싸이클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 덕에 도파민 아드레날린 같은 게 쑥쑥 나오는지 달고 살던 만성적인 우울감도 사라졌다. 실컷 돈 벌 때는 나 자신이 그렇게 하찮았는데, 돈을 못 버는데도 나 자신이 귀한 느낌이 드는 대단한 아이러니였다. 쥐똥만큼도 없던 에너지조차 상승한 게 느껴졌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얕은 통장잔고만 바닥 내고 있는 상황에 미래는 불투명을 남어서 존재여부조차 의심스럽다. 빚을 갚아도 후련하지 못한 이유고, 예측한 상황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사실 매우 사치스럽다고 느낀다. 나의 비대면 초자아는 매일 이 무책임한 여자야! 하며 나를 닦달한다. 가끔은 루틴 속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찜찜해졌다. 다 하지 못한 일들이 빚을 독촉하듯 마음을 독촉했다.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그 이후는 계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박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도 죄책감도 여전하고, 초자아새키의 속삭임이 스테레오 서라운드로 깔려도, 마음 한구석에 씩 웃고 있는 한가로운 마음이 나 자신을 본다. 나의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고픈 행복한 마음이 이제야 든다.


진정한 갓생 살기는 이런 게 아닐까 숙제를 해치우 듯 눈뜨기부터 힘들어하며 숨 돌릴 틈 없이 모든 것을 해내는 아침이 아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만 참고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 말이다.


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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