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빚 갚는 동안 6000만원을 번 친구

열등감의 빚

by Dubu

살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평가하는 가장 엄격하고 까다로운 평가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시험에서 목표한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 중요한 발표에서 긴장해 실수했을 때, 조직에서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외부에서 부정적 반응을 받으면 자책하는 마음이 든다. 자책하는 마음은 다양한 목소리로 우리를 괴롭힌다. “넌 해낼 수 없어.”, "네가 그럴 줄 알았지.", “네가 얼마나 참을성이 없는지 봐.”, “넌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야?”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날카롭게 찌르고 파고들어와 깊은 상처를 준다.


자책의 목소리는 질투와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고, 실패와 비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이런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마음에 영향을 미치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까지 이른다.


ADHD 환자의 증상 중

'돈 관리를 하지 못하며 충동적 소비가 많다."


모두 나의 이야기다. 사실 나는 빚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5개월 전 처음 300만 원 대출을 받기 전까지는. 두바이에서 인턴십으로 있다가 끝내 6개월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도중에 그만두면서 페널티를 물었다. 왕복 비행기값과 숙소비, 비자 발급 비용을 모두 토해냈다. 3개월, 딱 3개월만 더 버티면 돈을 쥘 수 있었을 텐데, 외국에서 느끼는 무언의 압박을 도무지 버틸 수 없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카카오뱅크 비상금 대출하기를 신청했다. 대출 절차를 밟는 내내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해야 할 알바들이 떠올랐다. 귀국해 일하거나 혼자 있을 때면 갚을 빚 생각이 머리에 가득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빚 생각을 잊고 싶으면 친구를 만났다.


지난 6월, IT업계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갑내기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경제강의를 제작해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통해 판매했고 매달 300만 원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벌써 누적 수익만 6,000만 원을 넘어섰다.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친구의 모습이 대단하고 자랑스러웠다.
사실 처음 친구가 수익을 공개했을 때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내가 ‘빚쟁이’인 것을 잊은 듯 기뻐서 자랑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 자신을 자책했다.


300만 원. 알바를 부지런히 하면 금방 갚을 수 있는 돈인 데도, 나를 가장 잘 챙겨주던 친구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을 어쩌지 못해 한동안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책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만하다고 받아들여지기보다 성취나 특정한 행동의 결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경험과 조건부 사랑의 기억이 우리를 더 많은 성취와 완벽주의로 내몰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자책은 하나의 생존전략이자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비판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먼저 채찍질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사회적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순기능 역할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열등감과 수치심을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우연히 첫 구절이 “잃어버렸습니다”로 시작하는 윤동주의 <길>이라는 시에 눈길이 머물렀다. “잃어버렸습니다./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길에 나아갑니다”. 시인은 끝없이 이어진 돌담을 끼고 걸어가 보지만 마음의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을 잃어버린지도 모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걷는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라는 구절에서 시인이 찾는 것이 ‘참된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내가 사는 것은, 다만,/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고 고백한다.


흔히 후회와 자책을 부정적 감정이라 생각하지만 자책은 삶을 바로잡고 싶어 하는 건강하고 본질적인 충동이기도 하다. 윤동주의 시처럼 나는 ‘잃은 것을 찾는’ 길 위에 있다. 그것은 비단 갚을 돈만은 아닐 것이다. 질투와 열등감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참된 나’도 함께 성장하길 기대한다.



길 - 윤동주 -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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