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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bu Feb 01. 2024

나이만 많고 철없는 나에게

벌써 반오십이라니


어제도 사람들이 잔뜩 모인 자리에 끼어 있는 너를 봤어. 누군가의 싱거운 농담에도 너무 잘 웃어준다고, 주변의 누군가가 너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지. 이야기를 듣고, 끄덕여주고, 웃어주는 너를 붙잡고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라. 그렇지만 정작 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네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것 같아. 말을 많이 한 날은 집에서 가서 후회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었지?


너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사회적 겉모습만, 혹은 너의 일부만 보여준다는 것을 알아. 예전에는 사람을 궁금해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너를 보여주는 일을 흥미로워했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런 게 부질없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여.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너는 외로움도 많이 타잖아.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낄 땐 한없이 혼자 있고 싶어 했다가도, 마음 기댈 곳이 없어 헛헛해하는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어.


너는 언제나 조금은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지. 그래서 그런 너 자신을 채워보려고, 달라지려고, 조금은 더 안정된 사람이 되려고.. 그런 노력이 아마도 평생 네가 살아온 방식이었던 것 같아. 나는 알아, 네가 너 자신을 채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네 삶의 목표 같은 것이었다는 것도.


있잖아. 나는 아직도 불안해. 앞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막막하고 깜깜해.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잖아.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외로움과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고독함,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속으로만 삭인 말들.


숨 쉬기 힘들고 눈 뜨기 힘들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나날들. 그런 순간들은 아직도 간간히 내게 찾아와 내 일상을 무너뜨려.


 그런데 말이야, 그 어떤 것도 그때처럼 힘들지는 않아. 한편으론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고, 있는 그대로의 너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말해주지 못한 게 안타까워. 그렇게 너의 모난 부분을 다듬고, 텅 빈 부분은 채우고, 흔들리는 부분은 잘 세우려고 애쓰는 너를 보기만 했던 것 같아. 모든 게 불안했던 23살의 나에게, 버티고 이겨내줘서 고마워


미안해 

너라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괜찮은 편이라고. 그렇게 말해주지 못해서.


미숙한 판단과 잘못된 선택, 더딘 실행력으로 그 지난한 날을 지나온 네가 나는 너무 고마워. 있잖아. 나는 네가 마음에 안 들었어. 너무나 잘 흔들리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일단 원하는 건 저질러버린 다음에 후회를 잔뜩 하는 네가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많았거든. 계획적이고 분석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부러워하면서도, 결국엔 마음이 가는 곳, 너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면 지나치지 못하는 너를 너무나 잘 알아. 그런 네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음 깊은 곳에선 그런 너를 좋아했는지도 몰라. 가끔은 실수하는 네가, 감정적이어서 마음 가는 대로 해버리는 네가, 스스로를 자꾸만 자꾸만 돌아보며 보기 싫은 모습일까 봐 걱정하는 네가 안쓰러울 때도 있고 토닥여주고 싶은 날도 많았던 것 같아.


너를, 나의 친구로 삼고 싶은 이유는 사실 네가 특별하다거나 완벽해서는 절대 아닐 거야. 먹는 것을 좋아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외치는, 나이만 많고 철없는 네가 재미있어, 사람들 앞에서 속으로는 투덜투덜하면서도 친절하게 말할 줄 아는 너의 가식이 가끔은 마음에 들기도 해. 그러면서도 진짜 싫은 상황이나 사람 앞에서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솔직한 너도 괜찮은 것 같아.


가끔 너는 별로지만 가끔은 꽤 괜찮을 때도 있는 사람이야. 내가 언제나 너를 한결같이 좋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친구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아. 너를 좀 더 든든하게 믿어주지 못한 것은 미안해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리가 커지고 있는 것 같아. 그건 참 다행인 것 같다.


모든 순간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가끔씩 부는 바람처럼 괜찮을 때가 있는 너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보려 해.


돌아갈 순 없지만 그래도 말해주고 싶어

너는 잘하고 있어.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해도 돼 나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22, 23, 24 그 언저리에 모든 게 불안한 건 당연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해


나의 불완전하지만 다정한 친구야

너의 모든 순간과 모든 선택을 위해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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