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ubu Jan 28. 2024

너 사회생활 안해봤니?

결국 터져버렸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실존의 위기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여태껏 지독하게 운이 좋았기에 모르고 살았던 거겠지. 반나절 동안 상가 내 작은 레스토랑에서 홀서빙 일을 하게 됐다. 근무시간은 10시 반에서 오후 9시 반까지. 알x몬 앱을 통해 구했다. 약국에 이어 두 번째 아르바이트다. 15분 일찍 도착했다.  매장 오픈 전이라 매니저님 오실 때까지 입구 앞에서 기다렸다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브런치. 슬슬 글쓰기가 익숙해졌다. 이 모든 게 의미 있는 결실을 맺으면 좋으련만. 기록 자체에도 의미가 있겠지. 속으로 넋두리를 하는 사이, 매니저님이 오셨다.


 45도 숙이며 자동인사 들어가고.. 드디어 입장이다.

정갈한 요리가 나오는 고급 양식당이었다. 하는 일은 테이블 청소, 식기 정리, 오픈 마감준비, 음료제조, 고객응대, 서빙 등등이다. 초반에 고객 응대는 실수할까봐서인지 거의 맡기지 않았다. 일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힘든 건 몸보다 마음이었다.


저시급보다 조금 더 받는 단기 알바생의 위치란 수드라, 최하층민, 하인과도 같다. 척하면 척. 들은 적 없는 지시도 어떻게든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일하러 온 거니까. 바쁜 건 괜찮다. 오히려 더 많이, 잘 일 하고 싶다. 내 일손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뿌듯하다. 힘든 건 가르쳐주지도 않은 업무를 해놓지 않았다고 화낼 때다.

겉으로는 예스맨 일색이지만 속은 울컥울컥 타들어간다. '그런 말씀하신 적 없는데요. 아뇨, 아까 안 알려주셨는데요. 그게 어디 있는데요...'등등. 마음속으로 되뇐다. 타박과 꾸중 앞에서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해한다. 매일매일의 삶이 고생스럽겠지. 그 와중에 새로 들어온 알바생 가르친다고 신경 써야 하는 게 짜증나겠지. 어리바리하고 실수만 하는 알바가 밉겠지. 돈 주고 사람 썼는데 일 좀 빠릿빠릿하게 하길 원하겠지. 나라도 그럴 거다. 모든 것을 새로 가르쳐야 하는 신입이 귀찮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생은 사람이다. 알바생은 당신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없다. 어린이용 접시가 어디 있고 레드와인은 어디 있는지 당신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못한 게 당연하다. 게다가, 놀랍게도 인간이기에, 대놓고 까는 뒷담을 들으면 아프다. 접시를 닦는 동안 내 얘기가 들린다.

한숨 푹푹 내쉬는 소리. "한국인 맞나.. 말귀를 정말 못 알아듣네" 다 들린다. 개미 발톱만 한 먼지가 되는 기분이다. 시키는 대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보기에는 어영부영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서툴더라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자존심이 바닥에 내던져져 우그러진다. 헷갈리거나 긴가민가한 부분이 생기면 바로 말하고 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매니저님은 손님이 올까 봐 조마조마하며 메뉴안내, 음료제조, 테이블 회전, 자리 안내를 동시에 가르쳤다.


와인셀러

워킹손님

디스펜서

쇼케이스..


듣도보도 못한 단어를 나열하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들리지가 않았다. 죄다 무슨 홀서빙 할 때 필요한 이름인데 나는 그게 진짜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 것이다. 심지어 손님들도 있어 소리도 울리고 해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숨죽이며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매니저님, 지금 하는 말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아주 천천히 하나씩 끊어서 말해줄 수 있나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에 개인석인 원을 가시신 않는다. 그들 역시 고달픈 삶의 고행자일 뿐이다. 책임 질 사람 없는 생채기만이 마음에 그어진 채. 이제야 이해했다.


서점에 왜 그렇게나 '나'를 지키는 자존감 책이 많은지를. 직장 위계의 최하층에서 온갖 꾸중과 타박, 혹은 고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존재의 위기에 처해 있다. 나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고, 자아는 실존의 위기에 처한다. 사람들은 필요한 거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위로가. 응원이 필요한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겼으면 좋겠다. 또한 상대방도 그렇게 여겼으면 좋겠다. 모두가 서로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누군가의 고함으로 상처 입지 않았으면. 혹은 내 아래 윽박지를 수 있는 누군가를 둠으로써 상처를 치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이 고달픈 위계의 어느 위치에 있던, 당신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응원하고 싶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비록 누군가는 그렇게 대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 원망하지 않는다. 누구나 각자의 상처를 이고 살아가니까. 그저 다음 알바생에겐 조금만 친절히 대해주셨면. 일단 알바생도 잠재고객인걸요. 인생은 우연의 연속,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새로 다시 만날지 모르잖아요.

작가의 이전글 괜찮아 인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