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ubu Dec 31. 2023

괜찮아 인마

어느 폭식증 환자의 고백

그러게, 요즘 왜 그러지.

아무리 음식을 먹고 또 먹어도 배가 고프네.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자꾸 먹고만 싶어.

애써 식욕을 참고 꾹 먹고 싶은 마음을 눌러보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에는 오로지 음식 생각뿐이. 떡볶이, 피자, 아이스크림, 케이크, 크림치즈 파스타... 안돼, 참아야지. 아까 밥 먹었잖아, 먹은 지 얼마 안 됐잖아. 

어제 늦게 밥 먹었잖아. 좀만 참고 이따 먹자.


그래. 이럴 때일수록 자기 계발을 하자. 해야 할 건 산더미인데 아무것도 하니까 자꾸만 더 음식 생각이 나는 거잖아.

하는 게 뭐가 있어 먹는 것 밖에 더 있어?

식량만 축내는 이 식충이 같으니라고.


인근 도서관에 갔다.

뇌과학과 도파민에 관한 책들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문제라 생각다.

스스로 증오하며 책 한자를 더 보려고 독서에 뛰어들었다. 

 다른 생각이 나지 않도록 스스로의 생각을 억누르고, 또 억누른다.  

심호흡을 고르고 명상을 하고 책을 피기 시작했다.

잘했어. 역시 통제하면 된다니까? 식욕은 의지의 문제였어. 그렇게 식욕이 잠잠해지는가 싶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온통 음식 생각뿐이.

쉴 새 없이 눈물이 나온다. 웃긴 게  배부르게 잘 먹고 있는데 음식 생각이 왜 날까,


아침에 얼굴이 퉁퉁 부어있을 테지만. 참자. 참자. 좀만 참자. 다짐을 하고 또 해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들어온다. 분명 먹을 것에 대한 계획을 세웠는데도 왜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는 걸까. 눈을 감으며 애써 복잡한 머리를 비우기 위해 호흡하며 이완하려고 해도 불안감만 치솟고 심장이 두근대며 각성된다. 


결국 냉실로 직행해 쟁여놨던 모짜렐라 한통과 창고에 쌓아둔 통스팸을 15분도 채 되지 않아 거뜬히 비워낸다.

게눈 감추듯 사라진 빈 캔을 덩그러니 바라보면서 자책과 수치심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일상 속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른다.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 소해야 하는지 알턱이 없다.

그저 바로 앞에 있는 음식을 통해 마음의 빈 공간에 욱여넣고 또 욱여넣어서 어떻게 서든 텅 빈 마음을 채우려고 한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이 항상 나도 모르게 존재한다.

그 위험한 결핍의 신호를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면 마치 음식은 우리의 삶 모두를 집어삼켜 지배하는 형국이 만들어진다.


 항상 음식에 집착하고 중독되며 거식과 폭식을 넘나들면서 음식에 사로잡혀 현재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가끔 차도를 건널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이대로 차에 치인다면 어떨까. 아쉽지 않을 것 같다.' 모르겠다. 죽고 싶었던 것까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포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울과 공허, 무기력을 피해 도망치고 싶었다.

최소한 죽지 않고 어딘가 다치기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쉬고 싶었던 것 같다. 무기력에 대한 스스로의 채찍질이 버거웠던 것 같다.

 다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을 테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무기력을 싫어했고, 무기력에 빠진 나를 나도 모르게 자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고, 달리는 차에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벗어나야 할 것 같다.

글 문맥과 문장구조, 단어와 어법이 전혀 맞지 않더라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쓰고, 꼭 정리정돈 확실하게 하는 것보단 일단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하다.

나의 깔끔하고 정돈된 생각은 내가 아니다. 행동 없는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이니까. 이론 내에서의 철저한 계획과 목표는 그저 생각일 뿐이고 존재하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행동한 것이 결국 나 자신이니까.


나는 항상 진리는 없고, 혹은 나를 비롯한 인간은 나약한 존재여서 진리가 있더라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다 보니까 애초에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 나한테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가치판단도 내 머리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아무 생각을 안 하게 되다.

세상은 어차피 알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세상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나는 어차피 내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에 대한 고민이나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원래 좋아하던 일이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더 해보려 한다.


지금부터 고민해 볼까? 음, 일단 나 먹는 거는 확실히 좋아한다,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고, 특히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움직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땀 빼는 것도 자주 생각나는 것 같. 바다는 걷는 것도 좋지만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두세 시간 앉아서 멍하니 쳐다보는 것도 좋은 것 같고. 또 운동하는 것도 좋아한다. 커피 마시면서. 특히 커피를 마시면서 해야 운동이 잘 되고 개운한 것 같다.


그리고 사람도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 모습,  가끔 나를 화나게 하긴 하지만 그건 나에게 주는 사랑에 비해는 정말 작은 부분이다.  

감정에 대해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화가 나면 낼 수도 있는 거고, 나는 화가 났다 짜증이 난다고 상대방한테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다.


 다만 그것이 감정적이었다면 지난 후에 사과를 해야겠지.

 나는 정말 솔직히 똑똑하고 의지와 인내도 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지금 조금 무기력할 뿐이지. 겨울이기도 하고.


 내일부터는, 물론 실패할 수도 있. 당연히 어렵. 너는 지금 무기력한 습관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너무 한 번에 바꾸려고 하지 말자. 그냥, 실패해도 괜찮아. 그냥 예상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도, 계획이 조금 밀리더라도 조금 덜 하면 돼. 헬스장 가면 되고. 공부 좀 덜하면 되지. 늦잠 잤다고, 혹은 공부할 때 딴짓 했다고 그걸로 내 하루를 망가트리지 말자. 원래 계획대로 인생이 되지는 않으니까. 그냥, 계획은 계획일 뿐 행동이 나를 증명하는 거니까. 계획은 단지 예측일 뿐이고, 예측이 어긋났다고 나의 모든 행동을 그냥 부서트리지 말자. 조금 바뀌어도 일단 움직이면 괜찮아.


이 글을 오늘 쓴 이유는, 2023년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감회가 새롭다. 무기력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것 같아 나의 무기력을 되돌아본다.





 


.


 


  

작가의 이전글 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