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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Feb 14. 2024

333 법칙

모두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산다.

  작은 사회인 교실에는 333법칙이 존재한다. 학부모든 학생이든 3은 교사를 엄청 좋아하고 신뢰하지만 3은 빨리 일 년이 지났으면 할 정도로 교사를 싫어하고 나머지 3은 별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오래전에는 333법칙을 믿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반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기도 하고 잘 가르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기에 적어도 1/2 이상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날 좋아하지 않을까 했다. 옆반 선생님이 와서 333법칙을 이야기할 때도 늘 나랑은 상관없는 딴 세상 이야기로 생각했다. 나의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노력한 만큼, 마음을 들이는 만큼 알아주기를 원했다. 그런 나에게 옆반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학급에서 3은 나를 좋아하고, 3은 그냥 아무 감정 없으며, 3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경력이 쌓이면서 알았다, 학급에서 1/2 이상 나를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사람이 좋은데 이유 없듯, 싫은데도 이유가 없다. 하물며 선택의 여지없이 만나는 교사는 나랑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모두가 좋아할 리는 만무하다. 엄해서 좋다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엄함의 정도가 넘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함께 고쳐가고자 노력하는 것에 고마워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타고난 성정을 굳이 왜 건드리는지 모르겠다면서 아이를 미워하냐고 묻는 부모도 있다. 어떤 가르침이거나 교육관이거나 함께 하는 아이들과 부모에 따라 평가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린다.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숙명처럼 알고 사명감을 갖고 열심을 다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하면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모두에게 좋은 교사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돌이켜보면 좋은 교사란 교사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이 어떻게 받느냐고 중요하다.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라는 옛말처럼 아무리 좋은 교사라 해도 아이들과 부모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교사의 노력이 먼저여야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와 부모의 시선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다고 눈치를 보면서 내 교육관을 밀고 나가지 못한다면 좋은 교사가 아니라 인기 있는 교사를 추구하는 꼴이 된다. 적당히 좋은 것이 좋은 것이지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사고자 하고 부모에게 좋은 말만 해주는 교사는 인기가 있을지언정 교육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했을 때 학급의 3이라도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좋아해 준다는 것은 큰 행운인 셈이다. 333법칙을 인정하고 나면 인기를 바라게 되지 않고 실망하지 않으며 나의 신념을 지켜 나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가족에서 친구관계가 더 중요해지는 사춘기의 아이들은 사실 서로 눈치 본다. 특히 "착한 아이"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자기감정을 누른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관계가 어색해질까 두려워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333법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희 중에 3이 날 싫어한다고 해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밍밍한 감정을 갖고 있다 해도 상처받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가 날 다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설명했다. 그것을 인정하면 도리어 관계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사라진다. 아이들이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은 모두에게 "착한 사람" 혹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기본 예의를 장착하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나'를 무작정 누르거나 감추지 않으면서, 이견을 조율하고, 진솔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333법칙을 인정하고 지내야 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도리어 "나"를 지킬 수 있다. 내 신념을 지킬 수 있으며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같은 모습으로 예의를 지키지만 그 사람이 날 좋아하느냐에 연연하지 않는다. 서로 통해서 진심을 나눌 수 있으면 좋지만 내 진심을 받지 못한다면 거기까지인 것이다. 미련을 두지 않는다. 얽매이지 않는다. 내가 진심을 다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은 철저하게 상대의 몫이기에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많이 편해진다. 


  333법칙은 관계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한다. 그렇다고 방종하자는 것은 아니다. 날 지켜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당당하게, 소신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기반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기감정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되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음을 알았으면 한다. 나처럼 많은 시간을 노력하면서도 눈치 보고 상처받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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