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Oct 18. 2023

과유불급

풍족함이 성장을 더디게 한다.

  "5분만 더 놀면 안 돼요?"

  "한 개만 더 주시면 안 돼요?"


노는 것도, 먹는 것도 약간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허락한다. 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는 시간 외 자유시간은 결코 아이들이 흡족해할 때까지 주지 않는다.  간식 역시 약간 부족하다 싶은 생각이 들게 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면서 아쉬워한다.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면 아이들은 다음 기회를 위해 노력하고 또 기다린다. 그리고 그 보상이 주어지면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최대한 누리고자 한다. 약간의 부족함이 가져오는 결과이다.


  평소 진짜 갖고 싶었던 것이 생기면 참고 참았다가 몇 번을 고려하고 고민해야 했던 시기가 있다. 일 년 중 단 하루, 그것도 단 한 개의 물건만 허락되었던 날은 생일이었다. 그래서 늘 기다렸던 것 같다. 태어나서 기쁘다는 생각보다 원하는 하나의 물건을 드디어 갖게 되는 날로 여겼고 어렵게 받은 그 물건을 얼마나 아끼고 아꼈는지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풍족하다 못해 남아도는 세상 속에 산다. 용돈과 관련된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나누어 쓰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순간 멈칫하면서 필요한 것이 없다고 했다. 왜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문구용품이나 학교에서 쓰는 물건을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집에 여분이 많다고 한다. 연필도 지우개도 아이들 학습에 영향을 미칠까 봐 미리 사주는 부모님 덕에 이미 쌓여있단다. 갖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전에 비해 정말 풍족하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그렇다. 그래서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 무엇인가 정말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턱 하고 품에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 스스로 뭔가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 같다.

 


  결핍이 있어야 의지와 목표를 갖는다.

  무엇인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면 굳이 뭔가 노력할 필요가 없다. 둘째 딸은 자존감도 높고 자아효능감도 높아 어떤 일에도 타격을 잘 받지 않는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도 잔소리를 많이 들어도 돌아서면 방긋 웃는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니까 괜찮다 말한다.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유독 공부에 대해서는 결핍을 느끼지 못한다. 굳이 욕심내서 더 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하면 잘할 거 같은 아쉬움에 늘 입맛을 다신다. 억지로 의지를 끌어낼 수 없어 한계를 느낀다. 반면, 첫째 딸은 늘 공부에 대해 욕심을 낸다. 부족하다면서 꾸준히 노력하지만 항상 자기 만족도는 낮다. 부정적인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면서 더 노력한다. 심적인 안정이나 편안함은 둘째가 누리지만 좋은 성과는 큰 아이가 누려서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결핍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의지를 갖는 것도, 목표를 이루는 것도 결핍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도달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갈증을 느끼고, 부족함을 깨닫게 되면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하게 되는데 쉽게 만족하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한다. 결국, 어느 정도의 결핍은 아쉬움과 함께 채우고픈 마음을 불러온다.


적당히 불편해야 자립할 힘을 기른다.  

  옛날에 아기 기저귀를 수월하게 떼는 것을 보고 누군가 비법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배변 훈련을 시키면서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약간의 꿉꿉함을 느끼면 본인이 불편해서라도 금방 뗀다고 했다. 팬티에 실수를 해도 느긋하게 갈아입혀 주면 다음에는 실수를 덜 하려고 한다. 배변 교육이야 방법이 다양하지만 적당한 불편함을 느끼면 본인이 편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한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공개적으로 혼나거나 사과하는 것이 창피하고 아이의 자존감을 낮게 한다고 우려한다. 물론 반 아이들이 보는데서 혼나거나 사과하는 것은 약간의 부끄러움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 이후 확실히 그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불편한 마음이 생기면 같은 잘못을 하지 않고자 애쓴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도 잘못된 행동이 무엇인지 배우고 함께 조심한다. 혼나거나 사과하는 아이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 반 전체가 불편한 분위기에 놓이기에 같은 잘못을 하지 않고자 애쓴다. 아이가 혼나는 것이 겁나서 혹은 필요한 물건이 없어 불편할까 봐 부모가 미리 혼날 것을 대신 변명해 주고, 준비물을 챙겨주면 아이의 마음과 생활은 편할지 몰라도 같은 잘못과 실수를 번복하게 만들게 된다.  

  풍족하고 편안한 생활은 아이의 자립심을 저해한다. 본인이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넘어선 믿음은 독립을 불가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가 나이에 맞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작은 불편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적당한 양의 스트레스나 긴장감이 면역력을 키운다고 말처럼 적당한 불편함은 자립심을 키우고 생활 속에서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부모 입장에서 그것을 불편하거나 불안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아이가 성장하는 기회로 믿고 한 걸음 뒤에서 지켜봐 주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결핍이 결여된 상태에서 자란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면서 점점 더 성장이 늦어진다. 예전의 10대와 지금의 10대들은 확실히 다르다. 외모와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지금의 10대들이 확실히 더 성숙하고 빠른데 비해 생활력이나 사회에서 살아가는 능력, 판단력 등을 포함한 책임감은 옛날에 비해 적다. 대학 수강 신청을 비롯해 회사 결근이나 이직을 부모가 결정해 준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에 가끔 나오는 일이 아니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흔한 일이 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핍 없는 성장과정도 큰 몫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편안하길, 안정되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길 바란다.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생긴다. 그럼에도 한 인간으로서 바르게 성장하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결핍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 만큼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원동력이 되는 '결핍'과  '적당한 불편함'이 부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속의 별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