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게 본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고슴도치 새끼를 직접 보면 너무 귀여워서 저 말이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아마 누구나 자기 자식은 귀하고 예쁘게 생각한다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어찌 자기 자식이 예뻐 보이지 않겠는가. 뭘 해도 이해가 되고 마치 또 하나의 자아처럼 공감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 사람들이 자식에게 엄하여 항상 다른 사람에게 예의를 갖출 수 있게 교육을 했다면 요즘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식을 혼내는 것을 굉장히 큰 일로 생각한다. 아이의 자존심을 뭉개거나 자존감을 낮게 만든다는 이유로 잘못을 해도 남들 앞에서 혼내지 못한다. 내 자식의 안위를 먼저 챙긴다.
내 아이만 바라보다 보니 객관성이 떨어진다. 아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내 아이만의 발달 시기가 있음을 강조하고 주변을 보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즘 많은 아이가 스스로를 긍정적이게 평가를 한다. 주관적인 자기 평가는 좋지만 그러다 보니 진실이 왜곡되어 잘하지 못해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냉철한 평가를 내리면서 자신에게는 후한점수를 주기도 한다.
오래간만에 고학년을 맡아서 그런지 시대가 또 변했음을 느낀다. 물론 코로나시대의 직격탄을 맞은 아이들이라 조금 다르기도 하다. 순수하고 어리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길러져야 하는 사회성이나 객관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처음에는 아이들마다 자존감이 엄청 높은가 보다 했다. 자기 평가가 너무 긍정적이어서 놀랐다. 아이 스스로 하는 평가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바른 인성을 지니고 성실하고 무엇이나 열심히 하고자 하는 아이들만 한 교실에 있는 셈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고치고자 하는 태도를 없다. 참다가 참다가 잘하지 못한 부분을 하나하나 짚기 시작했다. 인사를 잘한다는 아이들에게 선생님 인솔하에 교실이동을 할 때 옆반 선생님을 보고 인사하는 친구가 적었다고 말하면 그래도 다른 선생님에게는 인사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사를 잘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인사할 대상이 있을 때마다 인사를 잘하는 것이 진짜 잘하는 것이지, 몇 번 했다고 잘한 것은 아니라 했다. 굉장히 어리둥절하게 나를 보았던 아이들이 눈망울이 떠오른다. 성실함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꾸준히 숙제를 하는데 어쩌다 한번 안 하는 것이 성실함이지 매일 하려고 노력하는 마음만으로 성실하다고 할 수 없다 했더니 그래도 매일 하려고 노력한단다, 결과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비교해 주었다. 아이들의 자기 평가와 내가 보는 모습이 다름을 적나라하게 짚고 나서야 아이들은 이해했다. 자신만을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이제 슬쩍슬쩍 주변을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다. 나와 다른 이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보면서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에게 들이대던 잣대를 자신에게도 들이댐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문제는 '나름의 기준'이었다. 나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나름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나름'을 살펴보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이라는 것도 객관적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서 주변을 보면서 스스로 갖추어야 태도를 배워야 한다. 그런데 부모도 아이도 자꾸 '아이'만을 온화하게 바라보고 '나름의 기준'대로 평가하다 보니 발달해야 하는 시기에 혼자 쳐져있는 경우가 많아진다.
적절한 시기는 아이마다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부모는 주변 아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내 아이의 발달이 고르게 이루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으로 또래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 너무 느리거나 혹은 너무 빠르다면 아이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채워지지 못하거나 넘치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비교를 위한 비교가 아니라 성장을 위해 확인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부모도 아이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자기를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되어 본인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노력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이 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한다. 주변을 바라보고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보지 않으면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이 전부라 믿을 수 있다. 한없이 좁아지되 자기 자신만 중요하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 이기적여지는 것은 물론, 개성이라는 포장 안에 미성숙함을 숨기게 된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면 자기에 대한 반성이 없고 성장할 필요 또한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면 결국 '내로남불'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할 위험성도 있다. 자존감이 높은 것은 당연히 좋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쉬이 무너지지 않으면서 성장하기 위해 '복기'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자존감이 건강하다. 주변 사람과 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은 지금 그 상태에서 멈추지 않기 위한 도구가 되어준다. 더불어 자신을 존중하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우고자 노력하고 주변 사람들을 인정해 줄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옛날에 너무도 많이 다른 사람과 비교했다면 요즘은 너무도 많이 자신만을 생각한다.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기에 두 가지를 건강한 쪽만 선택하여 절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하면서 자신의 고른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평가는 '나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우리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