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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25. 2023

 기대감을 내려놓다.

다만  마음으로 진하게 응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똑같이 정을 준다고 생각하는데도 별스럽게 따르는 녀석들이 종종 있다. 이 아이들은 졸업하고도 잘 찾아오고 종종 연락을 한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도 갑자기 툭 하고 문자를 보내거나 찾아온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어른이 되어가는 녀석들을 보는 것은 소소한 기쁨이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는 다채롭다. 그래서 개개인별로 다른 기대감을 갖게 한다. 나름 다 가진 재능이 다르기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려는지 궁금하다.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떠나 자신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태도가 확실한 아이는 걱정이 없다. 가끔 엇나갈까 봐 불안한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는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자 노력한다. 한 공간에 있을 때도 졸업해서 떠날 때도 아이에 대한 기대감을 놓지 못한다. 그건 아마 희망이며 애정일 것이라 믿었다.


  아이들이 졸업하면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다가도 선뜻 연락하지 못한다. 괜한 문자에 아이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제한다. 그러면서 찾아오는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의 근황을 묻는다. 일 년 동안 흠뻑 정을 준 녀석들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얼마 전, 보고픈 아이가 있어 용기를 냈다. 만나자고 했으나 시간이 엇갈려 못 만난 지 2년 된 아이에게 문자를 넣었다. 이름을 불렀다. 답이 없으면 마음을 접으려고 했으나 아이는 반갑게 답을 보내왔고 우린 그렇게 만났다. 주책 아니었나 싶었는데 얼마 전에 만났던 친구처럼 반가웠다. 다만 그동안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뭔가 이루어내고 선생님을 만나야 할 것 같아 연락을 못했다는 아이의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왠지 선생님에게 자랑스러운 제자이고 싶다는 아이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미 나에게는 존재만으로 빛나는 아이였건만 아이에게 얹힌 부담감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학교를 찾아오는 제자들 중 많은 녀석들은 이미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이미 방향을 정해서 묵묵히 나가고 있으며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성공의 여부를 떠나 각자 나름의 삶을 사는 그들이 자랑스럽다.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을까. 이미 본인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있으며, 잘 살아내고 있는 그들에게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할 수 없다. 이미 어른이 된 그들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전할 뿐이다.

그러면서 아픈 손가락들이 떠올랐다. 뭔가 방황하고 힘들어하면서 사고치 던 녀석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문득 걱정되었다. 어쩌면 그들도 찾아오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데 보여줄 것이 없어 선뜻 찾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어쩜 초등학교 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지, 별다른 정이 남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어른이 내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삶이 자랑할 것이 없어서인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충족되지 않아서는 아닌지가 신경 쓰인다. 내세울 것이 없는 아이에게, 찾아갈 어른이 없는 아이에게 등대가 되고 싶은 것은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린다. 사실 그들이 힘들 때, 삶에 좌절을 느낄 때 존재만으로도 이미 빛이 난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남아있어 늘 빚진 거 같다. 한 공간에서 생활할 때 노력해 주는 것 자체만으로 아니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자랑스러운 제자였다고 꼭 말해주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린다.


  제자가 찾아올 때마다 자랑스러움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교사로서의 나를 반추하게 되었다. 혹시 바르게 살 것을 강조하지 않았는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부담감을 주지 않았는지,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을 말하지는 않았는지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너희는 이미 내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거나 뜨겁게 안아줄 것이라 말해주지 못함이 미안했다. 열어주지 못했기에 올 수 없게 한 것은 아닌지,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음을 말해주지 않아 지레 포기한 것은 아닌지 미안하다. 물론, 그들에게 나보다 더 나은 어른이 곁에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괜찮다.


  앞으로는 만나는 아이들에게 꼭 말해주어야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고, 한 공간에서 만났다는 자체가 큰 인연이기에 어떤 모습도 기대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포기의 의미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미 내 마음속에 사랑으로 자리 잡았으니 뭔가를 이루거나 성공해야지만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주어야겠다. 가장 좋을 때 찾아와도 좋지만 가장 힘들고 위로받고 싶을 때 오면 꼭 안아주겠노라고, 너를 위한 마음을 늘 비워두겠다고 약속해야겠다.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아이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모든 것이 괜찮다고, 열렬히 그 삶을 응원하는 선생님이 있으니 꼭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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