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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ug 07. 2023

그래서 교사는 뭘 원하는가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요구한다. 

  마음이 무거웠던 몇 주였다. 가르치면서 민원을 넘어선 협박의 멘트로 암담함과 좌절감을 느껴본 사람으로 서이초 젊은 선생님의 죽음이 남일 같지 않았다. 동질감을 넘어선 미안함, 공감을 넘어선 되새김질의 고통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들이 이렇게까지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은 행동하지 않아서 결국 지켜주지 못한 후배 교사에 대한 미안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더 이상의 희생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 그게 나 일수도 내 동료이고 후배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그날의 뜨거운 날씨를 넘어서는 열망으로 그 자리에 앉게 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가르치고 싶다는 욕구, 그것도 열과 성을 다해서 교육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누가 꺾을 수 있을까. 열정이 많은 교사일수록 민원을 많이 받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저 지식만을 가르치고 교실에서 큰 문제만 안 생기면 그냥저냥 넘어가는 교사라면 항의도 민원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럼에도 난 제대로 희망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그곳에서 외쳤던 구호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교사로서 지금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 나름 정리를 해본다.


아동학대처벌법의 문제

  2014년에 시행된 아동학대처벌법은 아동학대 방지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약한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 씻을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남기는 것을 넘어서 목숨마저 잃게 한다는 점에서 아동학대처벌법은 이미 만들어졌어야 하는 법이다. 2010년에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와 더불어 아동학대처벌법은 교실 안 유일한 어른인 교사의 횡포와 학대를 막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교사가 두 가지의 법을 반대하고 혹은 이 법으로 인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또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도 이 법은 아이를 위해서 반드시 시행된다고 믿는 교사가 더 많음을 말하고 싶다. 다만 과도기적인 현상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먼저, 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같이 지내려고 하는 노력보다 내 아이가 최우선시되는 교실을 선호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법을 악용한다. 친구들을 들러리로, 교사를 보모의 역할로 국한시키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더불어 아이의 관점에서 모든 행위를 판단하고,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다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어디까지가 아동학대 범위에 포함되는가.


 먼저 아동학대의 유형은 크게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 학대, 방임 및 유기'로 나뉜다. 이 중 어느 누구나 들먹이면서 교사에게 항의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신체 학대와 정서 학대이다. 보통 교사와 소통하거나 건의하기보다 이른바 '고소'를 들먹이고 민원을 넣으며 협상하고자 하는 부모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선을 넘어선다. 아동학대의 범위가 너무나 넓기에 아동 관점에서 폭력이나 폭언으로 느껴지면 학대로 간주된다. 그동안 뉴스에 실렸던 사건만 정리해도 알 수 있다. 아동학대로 고소당한 사례를 살펴보면 교사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래도 저래도 학대니까. 

*신체적 학대 : 학생들 싸움을 말리려 책상을 넘어뜨린 행위, 싸우는 학생을 몸으로 제지하거나 막기 위해 손이나 팔을 잡는 행위, 수업을 심하게 방해하여 세워놓거나 잠시 타임아웃 시키는 행위, 친구나 교사를 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잡는 행위 등등

*정서적 학대 : 반성문을 쓰게 하는 행위, 다른 아이들 앞에서 야단치거나 큰소리로 혼내는 행위, 옷차림을 지적하는 말, 남겨서 훈계하는 행위, 지나친 장난에 면박을 주는 행위, 수업에 참여시키지 않는 행위 

  우스개말로 교사들 사이에서는 아동학대법을 '내 아이 기분 상했어법'으로 부른다. 실제로 아동의 관점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앞뒤맥락 없이 아이가 상처받은 부분만 뽑아내어 민원을 넣거나 고소한다. 이런 부모가 정말 있냐고 묻는다면 정말 있다. 매해 한두 명 이상을 만난다. 등교하는 아이를 큰 제스처로 반가워해주지 않아 아이가 학교 갈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며 아침부터 항의성 문자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책상 정리가 안 되는 아이의 물건을 책상 위에 꺼내 올려놓았다고 아이가 속상해한다는 연락도, 아이들 앞에서 혼내 아이의 자존감을 낮게 만들었다는 전화도 어쩌면 소소한 습관을 가르치는 교사의 방향을 믿지 못한 부모의 민원의 일환이다. 이를 넘어서거나 지속했을 때는 학대로 간주하기도 한다. 학대의 범위가 너무나도 넓고 그 기준이 단순히 아동의 관점이라면 당연히 교사의 모든 행위가 학대로 비추어질 수 있다. 이런 아동학대처벌법은 교사의 손발을 묶고 있다. 결국 교사는 잠정적인 아동학대범으로 구석까지 몰려있다.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의 필요성 

  교사, 교감, 교장 등을 비롯하여 학교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이다. 누구든지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 관련기간에 신고할 수 있다. 특히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는 아동학대범죄를 알거나 의심이 있는 경우 즉시 신고하지 않은 경우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즉, 상황이 정확하게 판단되지 않고 의심정황만 있어도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확인절차 없이 교사를 보호해야 할 교감이나 교장이 교사를 신고하는 경우도 많다. 아동학대가 조금이라도 의심되거나 학부모의 강한 민원이 들어왔을 때 교사는 비빌 언덕조차 없이 절벽 끝으로 몰리게 된다. 약간의 '의심'으로도 교사는 언제든 신고당할 수 있으며 신고당했을 때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학대피해아동의 조기발견과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교실에서 조기발견하고 분리조치해야 할 일은 사실상 많지 않은 것은 현실이다. 적어도 학교에서라면 의심되는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충분히 조사를 걸친 후에 신고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동학대의 기준부터 명확해져야 하며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대해서도 교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뿐 아니라 수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친구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히며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아동의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아이를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몇몇 아이로 인해 또 아동학대처벌법으로 인해 교사를 비롯한 교실 내 많은 아이들이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하는 이 현실에 대한 대처방안을 시급하다. 

  

  

  사실 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대해서도, 어떻게 개정해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제시할 만큼 현명하지도 아는 것이 많지도 않다. 다만 아동학대를 운운하면서 고소하겠다는 부모의 협박으로 인해 교권보호위원회를 신청하고 병가로 일주일 쉬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죄책감을 느꼈는지 심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교육적 지도에 있어 무엇이 문제인지 반성을 넘어선 자책으로 숨쉬기가 어려웠다. 계속해서 내 잘못을 찾으면서 제자리를 맴돌다 땅을 파고 들어갔다. 교실에 있는 나머지 아이들에게 말로 할 수 없는 미안함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소송을 하지 않는 나조차도 그랬는데 막상 고소를 당했던 교사들은 어떤 마음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짧게는 몇 개월  그리고 길게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소송을 하고 나서도 교사는 어떤 보호도 보상도 받지 못한다. 무죄를 선고받지만 그동안의 상처와 고통은 무엇으로 갚아지고 덮어질 수 있는 것인가. 그런 교사를 빼앗긴 교실의 나머지 아이들에 대한 보상은 무엇으로 가능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가르치고 싶은 교사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아동의 신체와 정신을 학대하는 교사는 극히 드물다. 자칫하면 아동학대로 오해받을 수 있음에도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자꾸 뭔가를 하려 한다. 열정을 갖고 힘쓴다. 그런 교사를 보호해주어야한다. 그래야 교육이 살아남는다. 

교사를 믿는 수많은 부모들과 틈틈이 사랑을 표현하는 아이들의 격려로 교육현장에서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게 된다. 가르치고 싶은 교사의 열망과 그런 교사에게 믿고 맡겨주는 부모의 신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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