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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ug 09. 2023

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서로 곧게 바라보길 바란다. 

  여러 가지 일이 있고 나서 남편은 내게 물었다. 당신은 계속 휴대폰 번호를 공개할 것이냐고. 그렇다. 학기 초부터 나는 학부모들에게 휴대폰 번호를 공개한다. 망설인 적이 없었다. 교육은 학생-학부모-교사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진다는 선배선생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아이의 기본교육을 맡고 있는 학부모와 작은 사회인 교실에서 그 교육을 심화시키는 교사가 한 방향을 보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배웠다. 오랜 경험으로도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함께 해야 함을 느낀다. 학부모와 교사가 한 마음으로 아이를 가르칠 때 아이는 변화를 일으키고 성장한다. 시간 내어 학부모교육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것은 삼위일체 교육의 일환으로 궁극적으로는 우리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함이다. 그 시간 속에서 서로 충분히 소통하며 이해하고 신뢰감을 쌓일 수 있다. 교사 앞에서만 혹은 일 년 동안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내면부터 외면까지의 진정한 변화를 원하고 그것은 결국 부모와 함께 가야 가능하다. 그래서 소통을 주저한 일이 없다. 상처를 받는 일이 종종 있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교사가 천직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함께 호흡하면 변화하는 시간들이 소중하다. 매번 다른 아이들을 만나기에 새로움의 물결이 넘나드는 교실에서 늘 눈을 크게 뜬다. 가르치는 시간이 쌓여 능숙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잘 만날 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더 많이 보여서 좌절할 때도 있다. 장난꾸러기를 넘어서 수업을 방해하고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를 만나 아이가 변화하지만 그게 겨우 나와 있을 때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생기는 한계에 대한 무기력함을 느낀다. 내가 바란 것은 '진짜' 변화였고 성장이지만 일 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에 이룩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약간의 변화가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아쉬움을 금하기는 어려웠다.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노력해 본 결과, 부모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교육적 변화는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끊임없는 교실에서의 잔소리와 가르침이 미미하게 소소한 파동을 일으켜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가정까지 연계된다면 어떤 부분에서 아이는 몰라볼 정도로 변한다. 그게 '삼위일체 교육'의 힘이다. 방법적으로는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가정에서 또 교실에서 한 목소리를 내어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와 학부모가 신뢰해야 한다. 


  신뢰가 바탕이 되면 서로의 언행을 이해할 수 있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많은 언행이 우리 아이를 위한 선한 교육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믿어주고 기다려준다. 그런 기다림과 믿음이 있을 때 교사는 자기 역량대로 가르치고 아이는 그 속에서 성장한다. 학부모가 교사를 믿어주면 아이도 교사를 믿고 따른다. 초기에 삐걱대던 사이도 학부모의 믿음으로 원활하게 맞추어가고 서로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반면, 교사가 학부모를 믿게 되면 어떤 질문이나 건의도 오해하지 않는다. 아이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깊게 이해하고자 한다. 신뢰감이 있으면 서로 엄한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협력하여 나아갈 길을 도모한다. 온전히 우리 아이를 위해서. 

어쩌면 아동학대를 비롯해 교권추락, 많은 민원과 항의, 고소는 서로를 믿지 못함으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단순히 진상학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신뢰감을 주지 못한 교사들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서로 손해보지 않고자 하는 이기심으로 얼룩진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문제의 원인을 따지는 것을 멈추고 서로의 위치에서 각자 역할에 충실한 것을 믿고 맡겨야 하며 한 아이를 길러내기 위한 '동지' 관계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많은 교사들은 가르치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교육적 신념으로 아이의 성장을 위해 안정된 환경에서 가르치고 싶다. 교사의 이기와 권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서 법적인 개정과 입법에 대해 논하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사의 손발을 묶은 사슬을 끊어내는 것은 법을 넘어선 신뢰감이라 생각한다. 법은 서로 조심할 수 있는 테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그 안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신뢰감인 것이다. 어디가 문제의 시작인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려놓고 아이를 함께 키우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해야 한다. 


  많은 교사들이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여러 상처 속에서도 아이를 만나 희망을 노래하고 싶은 열망, 가르치면서 함께 호흡하고 싶은 뜨거운 열정을 놓지 않고 있다. 가르치는 일이 직업인 사람도 있겠지만 가르치는 일 자체가 삶의 기쁨인 교사도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가르치고 싶다. 진심을 다해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  아이들을 만나 충분히 사랑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환경 속에서 각각의 개성을 살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바탕을 마련하게 돕고 싶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싶고 세상으로 나아갈 발판이 되고 싶으며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든든하고 따뜻한 집이 되어주고 싶다. 

가르치고 싶은 것이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라면 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동지'로 인식하고 믿고 나아가는 것이 지금 내가 원하는 열망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의 목표가 같음을 인지하고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한 아이를 길러내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운명 공동체'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깊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교육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아이의 등대가 되어주는 부모와 교사로 서길 간절하게 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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