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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ug 14. 2023

누구랑 살래?

아이보다 더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더 오래 같이 살 사람이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20살을 독립할 나이로 정해두었다. 물론 그때 할 수 있을지 내 옆에 딱 달라붙어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일종의 마지노선이랄까. 데리고 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언제인가 떠날 아이들의 텅 빈자리를 보며 빈둥지증후군을 느끼지 않기 위한 방어막인지도 모른다. 아이보다 남편이랑 더 오래 같이 있었고 또 같이 있을 것이다. 결혼할 때부터 남편은 나보다 며칠 더 늦게 죽기로 약속했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약았다고 한다. 사후 뒤처리를 맡겨놓고 가볍게 사라지려는 속셈인 것을 들켜버렸다. 아니, 너무도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회피하고 슬픔에 젖어들기보다 슬픔을 던져주고 가고픈 마음이 들통났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부터 아주 가벼운 농담을 오가면서 육탄전을 마다하지 않는 우리를 보면서 딸들은 한숨 섞인 한마디 토해낸다. 


   "엄마, 아빠는 도대체 몇 살이야?"


  친구로 만나 4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한 우리는 티격태격하지 않으면 그날 뭔가 서운할 정도로 장난과 말싸움을 달고 산다. 진지하게 싸우기도 하지만 어느새 아이들이 크면서 싸움도 개그로, 일방적인 사과를 강요함으로 끝내버린다. 우리가 싸우면 아이들은 또 시작이냐는 표정으로 각자의 방으로 찾아들어간다. 뜨거운 용의 불길을 내뿜어내고 지친 우리는 잠깐 휴전한다. 짧지만 아주 뜨겁고 격렬한 싸움의 끝은 늘 비슷하다. 고집불통 남편을 이겨먹고자 사과를 강요한다. 특히 식사 때가 되고 배에서 신호가 오면 난폭하게 사과를 요구한다. 빨리 싸움을 종결하는 이유가 밥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남편은 어이없어하고 그렇게 피식 웃으면서 싸움이 끝난다. 물론 뒤끝 부리는 나는 딸 한 명 한 명을 찾아가서 실컷 흉을 보고 욕을 하면서 마음을 푼다. 큰 딸은 왜 결혼했냐고 이혼해, 이혼해를 외치고 둘째 딸은 아기 달래듯이 나를 달래고 아빠한테 가서는 아빠를 달랜다. 그리고 딸들은 엄마, 아빠 이혼하면 누구와 살 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왔다 갔다 하면서 용돈도 두배로 받고 잔소리하는 쪽을 피할 수 있다면서 엄마와 아빠의 이혼에 찬성하는 딸들이 괘씸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혼은 합의되었으나 양육권이 해결되지 않아 이혼하지 못하는 부부가 되어버렸다. 서로에게 양육권을 미루는 우리를 보며 딸들은 상처받는 척 하지만 이미 다 안다. 이혼하기에 엄마, 아빠는 사이가 꽤 좋다는 것을.  


  남편을 딸들보다 더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점점 나이 들어갈수록 곁을 지킬 사람은 남편이라는 사실이다. 딸들은 커서 언제인가 나를 떠나겠지만 남편은 의리와 정이라는 또 다른 사랑의 이름으로 곁에 있어줄 것이다. 남편은 나의 공과금과 세금을 납부해 주고, 경제관념 없는 대신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주며,  법적인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 줄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은행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보이스피싱도 당하지 못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단은 계좌번호도 모르고, 온라인이체도 할 줄 모른다는 나를 한심스러워하며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이런 나를 감당해 줄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남편과 오래오래 살 것이다. 딸들이 아니라 남편 곁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와 나는 공통점도 별로 없고 취미도 같지 않지만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같아서 지금껏 잘 살아온 거 같다.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사이로 서로가 하는 일을 믿어준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가끔 얄미워서 이해가 안 되어서 욕을 할 망정, 나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남편에게 고맙다. 


  요즘은 부부가 서로를 더 사랑하기보다 자식을 사랑하는데 집중하는 것을 본다. 부부의 사랑과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누구랑 오래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누굴 더 위할지 나온다. 자식은 품속의 자식이다. 내 품에 있을 때는 한없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자식이지만 곁에 계속 둘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내 둥지에서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더 기대지 않아야 하고 더 바라지 않아야 한다. 그저 힘찬 날갯짓을 하도록 응원해주어야 한다. 대신 나에게는 남편이 있지 않는가. 오늘도 마음속 깊이 바란다. 나보다 그가 더 오래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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