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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ug 16. 2023

호구 아니 바보에게 보내는 위로

자기 탓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믿어야 한다. 

사기와 사취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 코니코바는 매우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당신이 가끔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낫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평생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사치에 지불하는 조그마한 대가이다. 
우리 대부분은 믿음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당신이 현실주의자라면 스스로 조금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사실 나라면 한 발 더 나아가겠다. 만약 속아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당신이 기본적으로 충분히 신뢰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휴먼카인드>에서 발췌


  1학기말, 둘째가 중학교 졸업사진을 찍는데 콘셉트를 개화기로 잡았다고 의상을 빌리러 종로까지 다녀왔다. 조별 사진이라 의상을 대여하러 갈 때는 여자아이들 몇몇이 함께 갔다.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 적당히 골라주는 것을 입는다고 동행하지 않았고 여자아이들은 가서 고르고, 입어본다고 함께 갔다. 문제는 반납해야 하는 다음 날이었다. 졸업사진 촬영 후 모든 아이들이 반납하러 갈 시간이 없다고 학원 안 다니는 둘째에게 6벌의 의상반납을 맡겼다. 도시가 떠내려가라 비가 세차게 오는 날에 아이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반납하러 간다는 순간, 열불이 났다. 속에서 치밀어오는 분노는 이기적인 녀석들을 향한 것이었음에도 둘째에게 쏟아내는 모순적인 일이 벌어졌다. 아이는 전혀 상관없는 착한 친구가 함께 가준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더 화났다. 결국 근처에 있는 애아빠가 조퇴하면서 데려다주었다. 가라앉지 않아 씩씩대는 나에게 아이는 엄마, 아빠의 '핏줄'은 운운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엄마나 아빠도 자기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 해맑게 웃는 아이와 착하다고 말하는 애아빠 때문에 나만 나쁜 사람 같았다. 속이 문드러질까 봐 여러 날을 걸쳐 잔소리를 토해냈다. 이용당하는 자신의 모습보다 분노가 섞인 엄마의 잔소리에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친구가 아니라고, 넌 그냥 그들의 밥인 거라고 모질게 말하면서 선한 행동으로 상처받아야 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우리 집 가족은 다 호구인가 봐 하는 첫째의 말에 한숨을 쉬면서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둘째의 다짐을 받아냈다. 


  학교는 다른 사회보다 온화하고 안정적이라고 한다.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상황에 덜 놓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교육하는 사람들은 상식적이며 예의 있게 서로를 대하지 않냐고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을까. 좋은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말도 안 되는 갑질을 하는 사람부터 이기적인 사람, 자기 일을 떠맡겨놓고도 고마운지 모르는 사람, 말을 함부로 하고도 미안한지 모르는 사람, 사람의 급을 나누어 자기보다 아래로 느껴지는 사람에게 함부로 구는 사람 등등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처럼 보이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선하게 살고자 하거나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이들을 이용한다. 상처를 준다. 

그냥 착한 바보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고 비상식적인 사람들 곁에서 상처받으면서 대거리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알면서도 당한다. 이들을 당하는 자신을 탓한다. 마음이 여리고 약하기 때문도 있지만 스스로 손해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사람들은 이들을 '호구'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들은 '바보'이다. 어수룩하여 이용당하기보다 자신보다 남을 위한 선택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착한 사람인 것이다. 선한 사람이 당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 못되고 악한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피해자가 된 이들에게 뭐라 하지만 누가 봐도 가해자가 나쁜 것은 분명하다. 


  우리 둘째를 비롯해 내 곁에 있는 많은 '바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다. <휴먼카인드> 작가의 말대로 어쩜 우리의 바보스러움은 평생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에 대한 작은 사치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선한 본성을 버리지 않는 것에 대한 작은 대가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많은 바보들은 마음이 굳건한 이들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악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선함을 버리는 쪽을 택하지 않는다. 되려 정말 약한 사람은 악해지거나 이 기적여지기 쉽다. 불합리한 상황이나 손해 보는 환경에 자꾸 놓이면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라도 더 이상 바보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환경에 놓이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함을 지켜낸다면 어찌 더 강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들은 누구보다 강하기에 자신의 선함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자신을 탓하는 것은 멈추어야 한다. 매번 당하고 손해 보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 비난하는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나쁘고 악한 사람은 그런 나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길 바란다.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에 대한 작은 사치, 선한 본성을 지켜내기 위한 작은 대가라 여기면서 자신을 더욱 귀하게 사랑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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