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Aug 21. 2023

고2 엄마 맞아?

해줄 수 있는 일이 너무 없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큰 아이가 벌써 고2 중턱을 넘어선다. 누군가는 교육현장에 있으니까 입시정보에 빠삭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초등은 엄연히 다른 분야이다. 핑계인 거 같지만 교사를 떠나 한 명의 직장맘으로 아이의 입시를 위해 쫓아다니는 부모들을 따라갈 수 없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누군가에게 편하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한다. 아이가 고1 후반부터 수학만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할 때도 학원정보가 없어 난감했다. 열혈엄마가 아니어서 여기저기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못하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누구를 붙들고 툭툭 물어보는 것도 못한다. 은근슬쩍 남편에게 넘겨보아도 그런 면에서는 나보다 더 수동적인 반응을 보이는터라 포기하였다. 무지렁이가 된 이 느낌...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난감하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불안도만 커져갔다. 

  

  모든 것에 욕심이 많은 첫째라 중학교 때는 나름 공부를 잘하였다. 아니, 엄청 잘한다고 생각했다.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스스로 해내는 것이 기특하기만 했다. 공부에 신경써주기보다 독서와 글쓰기만 꾸준히 들이밀었다. 그때는 몰랐다. 고등학교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인 것을... 

고1 중간고사 이후 성적이 나왔다. 잘 보았구나 생각하고 쓰윽 넘기는데 옆에 있는 '등급'이 눈에 거슬렸다. 눈을 크게 뜨고 확인해 보니 잘 보았다고 생각한 점수와 조금 많이 다른 등급에 마음이 쿵. 참담했다. 아이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흔들렸다. 아무리 시험을 잘 보아도 4% 안에 들지 못하면 1등급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렇다. 모두가 잘 보면 100점을 맞아도 2등급으로 밀리고 약간의 실수로 3, 4등급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신경 쓰지 않은 과목은 7등급까지도 무난히 갈 수 있었다. 이런 등급제를 경험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 하는 조급증이 생겼다. 이래서 중등 엄마와 고등 엄마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나 싶었다. 우리 아이 공부는 좀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도대체 얼마나 잘할까 싶은 부러움과 질투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차마 뭐라 할 수 없었다. 당장 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하는 발을 동동 구르는 나에게 아이는 한 학기 혼자 더 해보겠다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은 참 잘도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그냥 아이를 믿기로 했다. 없던 정보력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력하는 아이의 등을 더 떠밀 용기도 없다. 욕심이 안나는 것은 아니다. 수학 학원을 다니면서 성적이 확 오르는 것을 보면서 종합학원이나 인강을 듣게 하고 싶은 욕심이 안 생겼다면 거짓말이다. 다행히 고집이 세서 흔들림이 없는 아이는 나의 모든 제안을 떨쳐버리고 본인의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다. 답답할 때도 많고, 다른 방향의 제안도 해보다가도 그냥 내 욕심을 내려놓는다. 아이의 인생이고, 자신의  목표대로 성실하게 하는데 굳이 엄마가 맞다고 이끌어야 하나 싶다. 이 또한 해줄 것이 별로 없는 엄마의 변명일 수 있다. 아이가 편하게 대학을 갈 수 있게 돕지 못하는 엄마라서 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혼자 헤쳐나가고 있는 아이를 믿는다. 가끔 잔소리를 양념처럼 뿌려대지만 아이의 선택과 노력이 대학과 상관없이 본인의 삶에 있어 단단한 기초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홀로 서는 아이를 응원하고 싶다. 어느새 욕심이 새살 차오르듯 마음을 밀고 들어오면 얕은 정보로 이것저것 들이밀 수도 있고 그럴 때마다 아이와 부딪칠 수도 있겠지만 쉬이 꺾이지 않을 아이의 고집에 내가 꺾여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누군가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니 선행학습 시키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한다. 열심히 초등학교부터 돌렸으면 지금 덜 고생하지 않겠냐고도 한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련한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까 하는 불안감과 동행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이 누렸던 여유로운 시간을 뒤집고 싶지는 않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대화하고, 여행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스스로 할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던 그 시간들의 값을 매길 수 없다. 

고2 엄마인데 참 많이 편하다. 더 이상 정보력이 없음에 한탄하지 않는다. 다만 밖에서 밥을 먹는 아이에게 집밥을 먹이려 하고 조각 잠을 자면서 늦게 오는 아이를 기다려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밥을 잘해 먹이는 것과 기다려주는 것, 가끔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일밖에 없지만 그것에 최선을 다한다. 고2 엄마라 바쁘고 힘들겠다고 하는데 난 정말 하는 일이 없다. 물론 피곤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 다른 부모에 비하면 너무 미미하다는 것을 안다. 때로는 이래도 될까 하지만 그냥 둔다. 아이가 도움이 필요해서 손을 뻗을 때 언제든지 응할 수 있는 거리에 머물면서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호구 아니 바보에게 보내는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