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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ug 23. 2023

처음처럼

초심을 유지해야 결국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쇠귀 신영복.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신영복 글씨체 소주 마시면 종북이냐."라는 표현을 보았다. 종북주사파 대부들 중 한 명의 글씨가 있는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사상을 의심해야 한다는 글도 보았다. 앞으로 나가는 것을 멈춘 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려 하나.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나는 '정알못'이지만 색깔론을 펼치는 그들을 이해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단순하게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많은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신영복선생의 글씨가 소주의 이름이 된 연유를 떠올린다. 그는 "가장 서민들이 많이 즐기는 대중적 술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함으로 소주에 자기 글씨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저작권료를 받지 않았기에 결국 두산주류는 성공회대학교에 1억 원을 장학금을 기부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서민을 존중하면서 깊이 사랑하던 모습과 글이 담고 있은 깊은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신영복선생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항상 처음처럼 새 날을 시작하고 있는가를 고민한다. 




  어떤 일을 하거나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을 얼마나 힘든  것인가.

처음의 뜨거웠던 열정, 수없이 고민으로 물들였던 시간과 마음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지 돌아본다. 아이들 앞에 처음 섰던 순간, 떨렸다. 잘 가르치고 싶었고 또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돕고 싶었다. 당연히 수업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고 수없이 많은 연수를 듣고 책을 읽었다. 내가 가져야 하는 교육적 신념을 지금도 한마디로 설명하지 못하지만 그때는 아예 알지 못했다. 그냥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 순간이 짜릿했다. 함께 호흡하는 것을 수업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조가 되어야 했다. 물 위에 보이는 우아한 자태 아래 수면 아래 쉴 새 없이 젓고 있는 백조의 바쁜 다리처럼 하루의 성공적인 수업을 위해 밤늦게까지 헤맸다. 하루는 즐거웠고 또 어떤 하루는 절망스러웠다. 실패도 실수도 많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 앞에서는 근엄했지만 뒤에서는 바들바들 떨었다. 여러 모로 부족함이 많았지만 마음만은, 열정만은 넘쳤다. 그런 열정을 알아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었던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계셨기에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 참 오랫동안 초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매해 다른 아이들을 만나기에 늘 새로웠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는 마음이 생길 때가 가장 위험하다. 

경력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조금 여유롭다. 익숙함은 굳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주변의 유혹에 흔들고 귀차니즘이라는 본능이 고개 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한다. 권태로움이 느껴질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할지도 모른다. 잘 돌아간다고 믿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톡하고 문제가 슬며시 익숙함을 비집고 나와 비상벨을 누른다. 부모의 항의, 아이들 사이의 다툼, 뒤에서 일어난 일들이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미련하게도 그때야 비로소 고개를 흔들고 온몸을 떨어서 습관으로 쌓여있는 나태와 자만을 떨구어낸다. 정신을 차린다. 마주해야 하는 문제로 마음은 힘들지만 초심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천천히 일을 해결하면서 겸손함을 소환한다. 그냥 터져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한숨을 쉰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도전한다.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고 한결같이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쉽게 잊고 쉽게 그만둔다. 그리고 이유를 찾는다. 계획을 세워놓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 시작해 놓고 어느새 타성에 젖어 되는대로 하는 것 모두 초심을 잃어서 생기는 일이다. 초심을 잃은 사람은 매일 같은 일상을 산다고 한다.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을 이겨 내기 위해 매일 익숙함을 비틀어본다. 어떤 선생님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렇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봐야 한다. 익숙해서 보이지 않은 것, 당연하게 여기던 많은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고 나면 모든 것이 새롭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반팔 티셔츠'가 어쩌면 팔이 짧거나 없는 이들에게는 차별처럼 느껴지는 문구가 될 수 있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래서 '반소매'라고 하는 것이 맞다는 말에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익숙해있는 일상 속에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하고 있는 교육방법에는 옳지 않은 것이 익숙함 뒤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의식을 날카롭게 세운다. 그러다 보면 처음처럼 어리버리하지만 굳은 의지가 생기고 다 알고 있다는 마음이 사라진다. 초심과 조금 다른 모습일 수 있지만 조금은 유려해진 그러면서도 잘 벼려진 칼을 갖게 된다. 




  구청에서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딸이 며칠에 걸쳐 열심히 달고나를 만들고 있다. 달고나를 만들어서 어린아이들이 모양대로 뽑기를 할 수 있는 체험부스를 연다고 한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걸쳐 달고나 만들기에 성공한 딸은 마치 수능에서 올백을 맞은 양 환호성을 질렀다. 50개 넘게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중간중간 깨알같이 자랑하고 또 먹고 먹이면서 온 집안에 달달함을 풍기고 있다. 똥손이라 걱정했었나 보다. 열심히 만들면서 중얼거린다. 


  "역시 사람은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니까.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해."

  "달고나 만드는데도 초심이 필요한가?"

  "그럼. 초심을 잃지 않아야 끝까지 예쁘게 잘 만들 수 있지~"


초심이 있어야 끝까지 잘 갈 수 있다. 처음 마음을 기억하지 못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끝까지 갈 수는 있겠지만 아름답지는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점점 더 모양이 선명하고 예쁜 달고나를 만들면서도 즐거워한다. 저 즐거움이 몇 개쯤이면 사그라들까 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예쁘고 발전된 달고나를 만들어냈으면 한다. 어쩌면 작은 일을 할 때부터 갖는 초심이 있어야 다른 일에도 그렇지 않을까. 작은 경험 속에서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중요한 일인지 배워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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