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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ug 28. 2023

우리가 남이가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은 모두 '남'이다.

  예전에 부산에서 많이 쓰이던 말 '우리가 남이가.'는 어느덧 정치적 의도로 인해 그 뜻이 변색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웃사촌의 정을 운운하고 함께 살면서 힘든 삶을 이겨내고자 하는 순순한 의미가 변질되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담합하기 위한 말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 <불한당>에서 깡패들의 건배사로 "우리가"로 운을 띄우면 "남이가"하고 답하는 장면을 보면 집단주의를 대놓고 강조한다. 하나로 뭉치기 위해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가장 약하고 여린 구성원을 희생이나 제물로 삼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집단주의는 아직도 만연하지만 그 시작은 어쩌면 '가족주의'가 아니었을까. 가족을 시작으로 한 마을, 도시, 지역, 나라 순으로 퍼져 단결을 강요하고 '우리'를 위해 개인의 선택과 의지를 참아내도록 학습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옛날 사람인 우리 아빠는 가족주의를 중시하면서도 가족을 최우선으로 귀하게 여기거나 대접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퍼주고 베풀어주느냐고 엄마는 쉴 새 없이 음식을 했고 딸들은 어렸을 때부터 당연스레 그런 엄마를 도와야 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형제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살기를 강조하는 가족주의를 표방하는 아빠의 모습이 모순적인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은 내 발목을 잡았다. 아니, 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우리'를 강조한다. 나 역시 엄마, 아내, 딸, 동생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때로는 그 의무감에 어깨가 눌린다. 참아야 하는 것도 많고, 원하는 것을 억누른 채 지내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 해야 할 것을 했고, 나를 위한 선택보다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 딸들이나 남편으로부터 '남의 것'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발끈한다. 우리가 남이냐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한껏 서운해한다. "우리가 남이가"는 어쩜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마음의 말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오래된 시선으로 보면 젊은 층의 사람들이 조금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보인다. 같은 단체에 있어서 '자기'를 먼저 생각하여 '우리'라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의지, 선택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단체생활을 하려면 또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참 동안 버리지 못했다. 시대가 변해가고 있음에도 난 '우리'라는 집단이 '나'라는 개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개인주의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함께 하지 않는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았을까.

다행히도 그들에게 "우리가 남이가?"하고 묻지 않았다. 묻기 겁났다. 사실 그들은 '남'이 맞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면 자식도 '남'이다. 내 뱃속에서 태어났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지만 '내'가 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자식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겠지만 결국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하는 타인이다. '나'를 책임지라고 할 수 없으며 내 선택을 강요할 수도 없다. (강요한다고 듣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그늘이 가장 안전할 수 있겠지만 어느새 그늘보다 커져 온전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딸들을 보면서 조금 가까운 '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대신해 줄 수도, 책임져줄 수도 없는 삶이다. 처음에는 서운했던 '남'이라는 생각이 이제는 점점 더 홀가분해지게 만든다. 나의 욕구와 욕망을 자제할 필요도, 숨길 이유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그들 인생을 살아가듯 나도 내 인생을 살면 되지 않을까.


  나 아닌 다른 사람은 모두가 '남'이라 인정하면서도 아직 '우리'가 중요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자신'만 우산 속에 비를 피하는 사람보다 같이 비를 맞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한다. 그러나 서로에게 이거나 기대 서있는 '우리'가 아니라 당당하고 꼿꼿하게 자립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 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즉, 건강한 '우리'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람이 먼저 홀로 서야 한다. '우리' 보다 '나' 스스로 바로 서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 먼저, 나 외에 다른 사람은 모두 '남'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어야겠다. 자식도 예외일 수 없다. '남'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길 원하거나 기대기보다 나 스스로 헤쳐나갈 능력이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면서 서로에게 기대는 사회는 이제 한물갔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다만, 건강한 '나'들이 모여 각각의 색을 빛내면서도 서로를 보완하고 아우를 수 있는 아름다운 '우리'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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