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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ug 30. 2023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

솔직함에도 적정선이 있다.

두 번 세 번 피곤하게 자꾸 질문하지 마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
방금 내가 말한 감정 감히 의심하지 마
그냥 좋다는 게 아냐 What's after 'LIKE'?                
-아이브의 "After like" 가사 중

  요즘은 "솔직함"이 대세다. 연예인들의 솔직함이 하나의 매력으로 여겨지는 것을 넘어서 많은 리얼리티쇼에서 일반인마저 여과 없이 자신의 사생활을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 솔직함이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솔직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많은 것을 그냥 드러내놓는다. 예전에는 꺼려했던 가정사를 시작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마저도 인정하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모두들 솔직함을 내세워 어떤 상황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 말에는 뒤끝이 없다. 솔직한 것으로 그 말의 책임을 다 한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자기표현이라고도 하고 또 줏대 있다고 한다.  

 

  "솔직함"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즉, 그 모든 잣대와 기준이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부분에 대해서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 흔히 하는 말로 태클 걸 필요가 없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 그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나 의견이 자기에게만 국한된 것이라면 말이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유주의국가에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솔직함을 무기 삼아 다른 사람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내키는 대로 판단하고 평가한 후 툭 말을 던진다. 사람의 외모에 대해, 옷차림에 대해, 성격에 대해,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이 보고 느낀 그대로가 객관적인 지표인양 말한다. 상대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자신의 진솔함과 진정성 있는 의견일 뿐이라 답변한다. 혹은 '널 위한 조언'이었다고 포장한다. 막상 상대는 원하지도 않는데 거기에 뿌려대는 솔직함은 독이 될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미디어에서 유행처럼 번져 일반 사람들조차 내세우는 "솔직함"이 불편하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해서 그런 것인지 날것 그대로인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데 말해주는 오버스러움에도 가끔은 "STOP"을 외치고 싶지만 그것은 둘째 치더라도 자신이 아닌 남에 대해 솔직함을 내세워하는 말들을 본인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국어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공감하며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경청하면서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거나 입장 바꿔 생각한 후에 공감하며 대화를 한다고 나와있다. 물론 그 뒤에는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라는 것도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처지 생각하기' 혹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기'이다. 앞에 언급한 "솔직함"이 불편한 까닭을 알았다. 상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솔직함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기보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감이 빠져있다.

교과서에 있는 그대로를 가르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한참 이야기하면서 나름 방향을 잡았다. 솔직함에서 '예의'를 빼면 무례함이지 않겠냐면서 답을 찾아내는 아이들로부터 한 수 배웠다. "솔직함"에 불편함을 느낀 것이 아니라 "무례함"이 불쾌한 것이었다. 자기감정에 솔직해져야 하며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지만 기본적인 모든 대화 속에는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깔려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례한 사람들을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솔직함을 표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툭 던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수 장기하의 노래 <그건 니 생각이고>를 불러주자고. 무례함에 상처받지 말고 유쾌하게 우리도 툭 던지자고 했다.


  감정을 숨기거나 누르기보다 바르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내가 성장하면서 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기에 우리 아이들은 또래 거나 어른에게나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 연습을 하기도 한다.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은 정말 필요하지만 그것을 모두 툭 꺼내놓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더불어 상대에게 솔직하게 다 말할 필요도 없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나와 다른 상대에게 내 속을 발랑 뒤집어서 보여줄 필요까지는 없다.


  어느 무엇에나 적정선이 필요하다. 솔직함도 그렇다. 솔직함이 독이 되지 않으려면, 주변에 상처가 되는 무례함이 되지 않으려면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내 생각이나 의견이 다 옳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솔직하되 무례하지 않은 삶을 위해 적정선을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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