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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Sep 01. 2023

공교육 정상화의 날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9월 4일 -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의 안타까운 일이 있은지 49재가 되는 날이다. 


  많은 교사들이 미안해하고 함께 아파하면서 이제 공교육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일어섰다. 벌써 몇 주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땀을 빼며 소리 높여 "진상규명"과 "아동학대법 개정" "생활지도권 보장" 등을 외치고 있다. 무엇이 변했는가. 교사들은 현장에서 극적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지만 교육 현실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법이 개정되려 한다. 태동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공교육 정상화의 날"에 대해 교육부의 제재가 가해졌다. 아이들의 피해를 줄이고자 많은 학교들이 휴업일로 지정하고 그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휴업일 지정이 불가하다 했다. 학기 중에는 재난 등 비상 상황이 아니면 재량휴업일을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교사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어 단체연가나 병가는 학생의 학습권침해라 안된다고 한다. 학생의 학습권을 위해 휴업일로 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가.    


  교육부는 협박을 넘어선 겁박의 길을 선택했다. 이렇게까지 으름장 놓는 것은 규제가 목적이 아니다. 관리자와 교사들, 파업을 강행하는 교사와 학생을 두고 나가지 못하는 교사들, 교사와 학부모, 교사의 연가를 지지하는 학부모와 파업한다면 의무를 저버린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목표라면 조금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한 때 분열이 일어났고 서로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을 살려야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안고 각자의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다. 집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점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떤 선생님의 말씀대로 길바닥에라도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은 것을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 참고 있다. 나 역시 입술을 꽉 깨물고 참고 있다. 


  3월 중순 한 아이의 거짓말을 시작으로 말도 안 되는 학부모의 민원이 이어졌다. 아동학대로 고소하겠다고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내용에 두 딸을 언급하며 부모 자격을 운운하는 문자를 받고 덜컥 내려앉았다.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렵다 판단이 되어 교장과 교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아이 부모와 통화했다고 이제 그 아이를 안고 일 년을 가라는 말에 무너져 내렸다. 교실에서는 아이의 거짓말과 변명, 눈빛에 시달리고 퇴근 후 계속되는 일방적인 협박성 문자와 전화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내려준 조치가 통화 한 통과 안고 가라는 조언이라니... 병가를 냈고 남편은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 그런 것까지 해야 하냐는 분위기에 숨이 막혔다. 더불어 교실에 다른 아이들을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나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되씹고 또 되씹어보았다. 학교를 나가지 못하는 일주일 동안 나는 깊은 수렁에 빠진 채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그 아이가 전학 가고 나서도 한동안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복용해야 했다. 

지금 뉴스에 나오는 여러 교사의 죽음에 평소 '우울증'이 있었다며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교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 우울증으로 치부되고 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고자 약을 먹어가며 바득바득 교실로 나가면서도 죽음조차 오인받는다.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슴을 치지 않을 수가 없다. 


  분노하고 분노한다. 남 일이라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9월 4일, 아이들이 있는 동안 교실에 있고자 한다. 징계가 두려워서도 내가 아이들을 위하는 참 교사라서가 아니다. 

병가를 내고 일주일이 지나고 학교에 왔을 때 겨우 2주 남짓의 시간밖에 함께 하지 않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아이,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손을 잡아주는 아이, 괜찮냐고 걱정해 주던 아이의 눈빛이 너무도 미안하고 고맙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장이 있어 조금 일찍 나선 날, 내일은 학교에 오시는 것이냐고 확인받고 불안해했던 아이가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격려와 지지의 문자로 응원해 주는 부모들이 쓰러져가던 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의 온기와 불안이 깊이 남아 늘 맴돌기에 빠질 수 없다. 난 학교에 하나의 점으로 남아 나의 방식대로 추모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소리 내고 행동할 것이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서로를 지지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우리 모두가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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