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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Sep 06. 2023

균형

모든 것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슬픔도 우울도 전염이 된다. 


  요즘 많은 교사들의 어깨가 처져있다.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49재를 추모하고자 많은 이들이 서이초를 방문했다. 먹먹했다. 한참 어린 후배선생님의 고통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추모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도 참 아팠다. 살아생전에 저렇게 긴 줄의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다면 괜찮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감히 그분의 고통에 대해 혹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그래도 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서 말도 안 되는 이 교육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나서는 동지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꿈꾼다.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인한 억지스러운 마음에 통한이 밀려 들어온다. 한없는 우울함과 피곤함에 몸과 마음이 잠식당한다. 


  무엇이 원인이었다고 말하기에는 현재 교육현장은 많이 곪아 있다. 어떤 교사는 그동안 교육을 망친 것은 선배교사들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내 아이만 위하는 육아방법이 문제라 하고 어떤 이는 학생인권조례 혹은 구체적이지 않은 아동학대 관련 법이 문제라 한다. 어느 하나만 문제였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문제였고 적절하게 버무려지면서 안으로 곪아서 터지기 직전인 것은 꽤 오래된 거 같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동안 존중받지 못했던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 인식하고 존중하고자 하는데 많은 역할을 해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면 과연 변화가 있었을까. 아동학대법 역시 많은 아동을 폭력에서 죽음에서 구하는 데 있어 큰 부분을 담당했다. 체벌을 앞세워 감정을 매나 손바닥에 담거나 욕설을 포함한 폭언을 마음껏 지르는 교사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은 학생인권조례와 아동학대법의 지대한 공으로 볼 수 있다. 신규교사일 때는 참 많이 보았던 장면들이었다. 평범하게는 손바닥을, 심하게는 뺨을 맞는 아이들도 흔했다. 그때 교사는 교실이라는 작은 왕국의 왕이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교실도 있었지만 독재정권으로 공포와 억압으로 이끄는 교실도 있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옛 말에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았다는 말은 되려 진상 교사의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모습을 감추는 데 있어 학생인권조례와 더불어 아동학대 관련 법은 큰 역할을 해냈다. 그러면서 그 힘이 아이에게 그리고 부모에게로 넘어갔다. 서서히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여러 가지 법들이 교사를 얽어매는 시간 동안 아이는 가정이라는 왕국에서 왕자 또는 공주로 자라게 되었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육아법의 열풍으로 "우리 아이만" 소중한 부모도 많아졌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고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본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이 부모들을 그냥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마음보다는 학교에는 잠시 맡겨두는 마음으로 교사가 내 아이를 잘 가르치는지 돌보는지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시대 부모가 학교에서 당한 여러 일로 인한 불신일 수도 있고, 여러 법들로 무너진 힘의 균형 탓일 수도 있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 부모, 아동으로 셋인데 어느새 어떤 이유에서든지 상관없이 균형을 잃었다. 분열이 일어났다. 교육에 대한 인식이 고루 성장하기보다 한쪽으로 추가 기운다. 각자의 역할에서 힘을 다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텐데 자꾸 서로의 공간을 넘나들며 요구하거나 무관심으로 대처한다. 힘이라는 공이 처음에는 교사에게 주어졌다가 이제는 흔적도 없이 부모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가끔 아이에게 넘어간다. 교사를 외면한 채 부모와 아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보니 불신이 쌓인다. 벽이 자꾸 높아진다, 분단의 벽이.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다가 이젠 생존권을 위협하는 단계까지 다다르고 있다. 


  난 교사이고 또 엄마이다. 교사일 때 교사의 권리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엄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를 맡긴 부모가 어떻게 교사에게 그런 말을 하냐고 분해하는 교사들이 있다. 그럴 때는 입장이 바뀌면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묻고 싶다. 나 역시 엄마로서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고 두 딸의 선생님의 공간을 존중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부모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함께 가고자 한다. 어느 쪽의 입장이거나 내 자리에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늘 긴장을 놓지 않는다.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니까. 


교육은 가정을 기본으로 학교까지 이어진다. 학교 따로 가정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긴밀하고 미묘한 선이 끊어질 때 교육은 흔들린다. 힘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제대로 그 능력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제 원인을 넘어서서 균형을 잡아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 집중해야 한다. 누구의 탓을 하기보다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교육을 바로 세워 사람이 함께 사는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해 "균형" 잡는데 집중해야 한다. 어느 쪽으로 쏠리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순간의 실수와 착각, 오해로 무너지는 것은 오히려 균형을 잡아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을 기르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은 누가 옳냐 그르냐를 떠나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유준재 작가님의 그림책 <균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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