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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Dec 04. 2024

생존을 위한 집안일

집안일이 아이의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면 시켜야 하지 않을까.

  "혹시 너 마시는 생수, 어디서 났어?"

  "저기 선생님 간식통에서 빼서 마셨는데요."

  "나에게 허락은 받았고?"

  "아니.. 그건 아니고요... "


  연달아 이틀, 두 명의 아이가 각각 내가 쟁여놓은 생수를 허락도 없이 마셨다. 아이 한 명이 처음 그랬을 때 잔소리 해서 그런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로 또 그런 일이 있어 화가 좀 났다. 물론, 그 생수는 물을 챙겨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개인 돈으로 사놓은 것이기는 하다. 다만 학교 용품이 아니기에 아이들이 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져갔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런 말없이 혹은 감사의 마음 없이 가져간 것은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누누이 이야기했던 바다.

 며칠 뒤, 그중 한 아이가 다른 아이 교과서를 자기 책처럼 편하게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구 책인지 물었더니 민망해하면서 쓰윽 돌려주었다. 이렇게 서로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도 한 가지 잔소리를 다른 일에 접목시키지 못하는 아이가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 없는 곳에서 여러 상황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부모가 너무 많은 것을 챙겨주고 대신해 주어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로 없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집안일 대신 공부하거나 독서하라고 하기에 아이들은 생각지 않은 상황을 맞닥트리면 당황한다. 아이들의 대부분이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자신에게 혹은 상황에 너무 몰입되어 있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문제만 해결하려고도 한다. 간혹 예의 없다는 생각이 들고  무심한 그  무례함에 화나기도 한다.

대접받다 보니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심화되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못해도 잘했다고 생각하고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데 스스럼없다. 반대로 쉽게 좌절한다. 해보지도 않고 어렵다고 하거나 못한다고 한다.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실천하는데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마주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주변 사람들을 고려하면서 빠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감정을 조절하며 필요한 조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학 단어로는 '메타인지'라고도 표현되지만 난 '공부머리 + 생활머리'의 결과라 말한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가지 머리지만 가르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생각보다 깊은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단순히 공부머리가 좋다고 메타인지능력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뢰하면서 주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공부머리와 생활머리 둘 다 길러져야 한다.

두 가지 머리를 기르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바로! 집안일을 꾸준히 하게 하면 된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작은 일을 하다 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여러 상황별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자신감을 갖게 된다. (둘째 딸은 그릇에 랩을 싸놓고 완벽하다고 엄청 뿌듯해한다. 자존감이 상승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부모의 일도 덜면서 아이의 메타인지 능력을 늘릴 수 있다면 집안일을 흔쾌히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집안일시키기 예찬론자가 된 듯 하지만 진짜 중요하다. (사실 난 나의 생존을 위해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시킨 부분도 있다.)

 

  여러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둘째치고 아이의 생존에 관여한다면 어떻겠는가. 불이 났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빠져나올 궁리를 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모든 위험한 상황을 막아주거나  대신해 줄 수 없기에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꼭 살아남기 위한 필수 노동이 집안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져서 자꾸 시키고자 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잔소리하면서 생존능력을 극대화해 주면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자기 삶에 만족해서 살 것이라 믿는다. 당연히 생존을 위한 힘도 생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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