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길은 마음을 따라간다.
10월. 학부모가 오는 학교 행사가 많았던 달이다. 교과 공개수업에 운동회, 방과 후 활동 공개수업 등등 연잇는 행사에 숨 돌릴 틈이 없었다. 행사 전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학부모들의 학교 방문은 이래저래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나의 내성적인 성격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갈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와 농담 잘하는 사회적 자아의 활동으로 행사 기간 내내 많은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현재 우리 반 아이들의 부모님도 있지만 예전에 정을 나누었던 부모님을 비롯해 나는 모르지만 나를 아는 분들과도 반갑게 인사하고 스몰토크를 했다.
나를 잘 아는 분을 비롯해 그렇지 않은 분도 이야기 끝에 "선생님은 홍길동 같으세요. 학교 행사 곳곳에서 부지런히 일하시더라고요. 여기저기 다 선생님이 계시더라고요."라는 말을 건넸다. 사실 눈에 보이게 일하는 것보다 가늘고 길게 살자는 좌우명을 갖고 조용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나는 당황하며 답했다. "제가 한 덩치 해서 쪼금 일해도 일하는 게 눈에 보이죠. 호호." 그랬더니 "아니요. 선생님만 유난히 바쁘시게 일하시던걸요." 한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다들 열심히 하시죠."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내 행동이 그리 컸나. 아니면 아직 목표 몸무게에 달성하지 못해 남아있는 3kg의 살이 나를 눈에 뜨이게 했나. 여러 번 비슷한 소리를 듣다 보니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시작했다. 목소리는 크지만 일하는 티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이 먹으면서 오히려 보이는 일만 했나 싶었다.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교무실에 만난 교장은 다른 방향에서 나를 의아하게 했다. 잠깐 들러서 친한 교무실 선생님과 사적인 수다를 떨고 있는 순간, 교장이 들어왔다. 인사하고 다시 수다에 집중하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한 마디 툭 던졌다.
"선생님은 얼굴이 왜 그리 까매?"
"네? 저 원래 까만데요."
"아니... 평소보다 더 까만 거 같아서..."
봄부터 겨울까지 얼굴은 물론 속살까지 까만 나에게 더 까매 보인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원래 까만 사람에게 까맣다고 하는 것은 좋은 뜻일까 아님 걱정하는 마음일까. 그곳도 아니면 그냥 할 말이 없는데 뭔가 말해야 하는 압박을 느꼈나. 교무실을 나가면서 던진 교장의 말에 교무실 선생님이 고개를 내리고 소리 없이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나의 째림을 감지하더니 "그렇게 할 말이 없었나." 하며 웃음을 갈무리한다. 까마귀에게 까맣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유달리 얼굴이 더 까뭇까뭇하게 탄 것도 아니었는데 굳이 한마디를 던지고 가는 그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누구에게는 홍길동처럼 동에서 번쩍 서에게 번쩍 일하는 사람이고 누구에게는 얼굴이 까만 사람이라니 나를 향한 시선이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것에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지혜로운 선배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행동이 큰 게 아니라 아마 부모님들이 선생님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관심이 많다 보니 선생님의 행적을 찾게 되고 또 더 잘 보이게 되고 그런 것이지요."
순간, 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 담임이어서 혹은 담임이 아니어도 긍정적인 관심이 얹어진 시선이었겠구나 싶었다. 우리가 그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뒤통수만 봐도 내 아이를 찾아내는 것처럼. 그렇다면 거의 매일 보는 교장이 던진 까맣다는 말은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비교하지 않고 더 이상 생각하지않으려 그냥 덮는다.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것은 재채기와 사랑이라고 했던가. 깨달음에 이어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몰려왔다. 얼굴 까만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홍길동처럼 여기저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봐주시는 부모님의 눈길에 따뜻한 위로가 가득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