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도 학습 능력으로 천천히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다.
나는 단순 암기를 잘한다. 살면서 온갖 시험을 마주하면서 단순 암기의 힘은 얼마나 빛을 발하던가. 시험 후에는 아주 깨끗한 백지처럼 비워지는 뇌였지만 단순 암기 능력을 내려주신(?) 우리 부모님께 감사할 일은 많았다. 우선, 벼락치기에 최적화된 능력이다. 짧은 시간에 온 에너지를 쓰면 웬만한 양은 소화가 되었다. 의미를 몰라도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그냥 잘 외워졌다. 그러나 벼락치기의 단점은 아무리 잘 외운 내용도 시험지에 적고 나면 공기처럼 사라진다는 것! 그럼에도 불편 없이 살았다. 왜 모르냐고 기억하지 못하냐는 언니를 비롯한 주변 몇몇 사람의 무시만 견디면 괜찮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 나름 글로 내 생각을 정리하려다 보니 읽고 공부한 내용들이 입안에 맴돌고 글자로 형상화되지 못했다. 아주 어렵게 첫 글자를 끄집어내 보지지만 하나의 단어는 완벽하게 그냥 입안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지금은 나이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사실 좀 의심하고 있다. 벼락치기로 인해 기억을 주관하는 뇌의 한 부분이 발달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면서. 후회하기 전에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 선생님을 통해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길러주는 방법을 배웠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그 능력을 끄집어내고 실천을 통해 키워주는 과정이 얼마나 감탄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 두 딸을 비롯하여 내가 만난 모든 아이들에게 강조하면서 자리 잡게 돕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놀아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놀리고 싶어도 진짜 시간이 없다. 중간, 기말 평가를 준비하는 기간도 길고 사이사이 과목별 내주는 수행평가를 해가는 것도 바쁘다. 그래서 학교생활을 하면서 학원을 여러 개 다니는 아이들이 대단해 보인다. 어떻게 학교 생활, 숙제를 소화하고 학원을 가고 또 학원 숙제를 소화할까. 어쨌든, 다시 돌아가서 말하자면 노는 것이 중요한 초등학교에서부터 공부가 하루 일상 중 하나로 여겨지게 하기 위해 습관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간을 정해서 공부를 매일 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다. 30분도 좋다. 다만 1시간이 넘기면 안 된다. 아이의 집중력은 그 시간까지 되지도 않는 데다가 아이가 너무 힘들다. 이때는 무엇을 얼마나 더 익히고 지식을 얼마나 더 넣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정해진 시간에 앉아 정해진 양만큼 하는 “엉덩이 힘” 즉, “공부습관”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공부를 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목적인 셈이다. 소리 내어 책 읽기를 시작으로 학교 공부를 가볍게 복습하면 어떨까. 학교에서 혹시 숙제를 준다면 그것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수학 문제집도 넣어주되 많은 양을 강조하지 않아야 아이도 부모도 지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아이랑 책상에 앉는 것을 약속하고 아이가 집중하게 함께 해주어야 한다. 부모도 같이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쓰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과연 이렇게 몇 년을 해야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이 생기는가. 음.. 적어도 5~6년? 같다. 너무 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른도 생각해보면 작은 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의지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가. 아이들도 그렇다. 무엇보다 쉽지 않고 재미있지 않은 공부를 습관으로 만드는데 그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요즘 교육 관련 선전이나 육아서적을 보면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만들기 힘든 능력인지 말하지는 않는다. 사실 제일 만들어주기 어려운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꾸준한 관심과 애정, 함께 해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쏟는 정성만큼 내실 있는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이 만들어진다.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부모의 꾸준한 노고가 녹아들어 가야 하기에 힘들다.
나 역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만들어주기 위해 6년 정도 아이와 끊임없이 씨름하고 밀당을 했다. 영어단어 외우기, 책 읽기, 학교 공부 복습하기 등을 넣은 공부계획을 일주일 전에 세우고 매일 정해진 시간만큼은 공부하게 했다. 그 시간은 함께 앉아있어 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6년 동안 학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정해진 시간만큼은 스스로 공부해 나갔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과목별 문제집을 추가하였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익숙해졌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던가. 뭔가 습관이 만들어졌다고 안심하거나 내 생활에 바빠 미쳐 아이에게 관심을 쏟지 못할 때를 아이는 귀신 같이 알았다. 스스로 계획을 짤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어떻게든 공부 양을 줄이거나 대충 하려고 꾀를 쓰는 일이 빈번하게 늘기도 했다. 며칠 그렇게 편하게 지낸 아이의 얼굴이 어찌나 기름기 흐르고 편안해 보이던지...... 이렇게까지 공부를 시켜야 하나, 공부습관을 만들어주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정신을 차려 다시 아이의 눈속임을 잡아내고 긴장의 끈을 조였다. 작심 3일이면 어떠하랴. 또 다른 작심 3일을 하고 또다시 작심을 하면 된다. 사실 아이보다 내가 힘들어서 놓고 싶었을 때도 많다. 되는대로 살아라, 공부가 뭣이 중한데.. 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6년 내내 싸우고, 달래고, 협박하고 격려하면서 그렇게 이끌어 갔다.
아이가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고서는 이리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하다. 알아서 계획 세우고 알아서 시간을 정해서 한다. 결과?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만 사실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밥을 씹어서 먹여줄 필요도 없고 숟가락을 들게 할 필요도 없어져서 밥은 안 굶고 살겠지 한다. 공부를 넘어서서 어떤 일을 해도 자기 주도적으로 해나가리라 믿음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6년 동안 아이도 나도 쉽지 않은 시간과 정성을 쌓았고 그렇게 쌓인 습관은 능력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게 쌓인 것은 쉬이 무너지지 않으리라. 그리고 지금 바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우리 아이가 살면서 언제인가는 쌓인 힘과 능력을 느끼고 잘 사용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실력이 쌓이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보인다.
공부 계획 속에 지식적인 공부뿐 아니라 리코더 연습, 책 읽기 등을 넣었다. 이 모든 것을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나갔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짧은 시간에 좋은 효과를 내는 하루살이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가 적었다. 매일 조금씩 하다 보니 부담감도 당연히 많지 않았다. 시험 때가 되어도 수행평가를 볼 때가 되어도 몰아서 공부하거나 밤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도 꽤 괜찮은 결과를 들고 왔다. 먼지가 쌓이면 덩어리가 되고 그 덩어리가 쌓이면 정말 어마 무시하지 않은가. 먼지가 불쾌하다면 더럽게 느껴진다면 물 한 방울이 고여서 한 그릇을 만들고 그 한 그릇들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고 하자. 쌓이는 아이의 실력은 눈에 확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음이 서서히 느껴졌다.
1~2학년 때는 모든 공부가 1시간을 넘지 않았고, 3~4학년이 되어서는 하루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공부했다. 주변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힘들지 않냐고 하였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그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아주 실컷 놀았기에 되려 학원 다니는 아이들보다 시간이 남았다. 물론 엄마 마음로는 좀 더 해줬으면 하기도 했고, 빈둥대는 녀석들을 보면서 속이 좀 터지긴 했다. 그래도 공부 시간 외에 다른 시간만큼은 손대지는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놀지 못하면 눈물을 글썽이면서 삶의 의미를 묻는 녀석들이었기에 사실 더 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의 실력이 쌓이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에 내심 불안한 부분도 있고 여기서 조금만 더 시키면 진짜 잘하겠다는 욕심이 들어왔다. 그래도 불안과 욕심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은 나름 실력을 착착 쌓아갔다. 어느새 이 정도가 되었지 하면서 놀랄 때도 많다.
내가 만난 우리 아이들 자랑스럽게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나는 나름 빡센 선생님으로 소문이 났다. 학교에서도 틈틈이 뭔가를 아이들과 많이 하기도 하고 한 번에 많은 양을 공부하면 아이가 힘들까 봐 부모님께 틈틈이 안내하고 연습시켜달라, 공부시켜달라 부탁을 드린다. 그러다 보니 뭔가 아이들이 해야 하는 것이 많아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은 차근차근 잘해나가고 있다. 학기초와 비교가 안된다.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기특한지 모른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우리 아이들의 습관을 잡아주고 실력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혼자 전율할 때도 있다. 당연히 나만의 노력이 아님을 안다. 부모님의 관심, 사랑 그리고 함께 해주는 시간이 녹아들어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고맙게도 참 잘 따라와 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부모님들이 많아 동지의 마음으로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올 한 해, 감사한 일이 너무나도 많다.
딸들이 크고 나서 나는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안내해주신 그 선생님께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시키셨고 수많은 아이들이 할 수 있게 도와주셨던 선생님의 도움으로 두 딸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키워줄 수 있었고 아직도 내가 만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 능력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도울 수 있음이 행복하다.
처음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소개할 때는 그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좋은 것인지만 이야기했다. 그 능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된 것이라고 하면 아이도 부모도 시작도 전에 부담 갖고 거부할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또 많은 아이들을 계속 만나면서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가 빠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마음을 먹지 않으면 공부를 습관을 만들어줄 수 없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고 그냥 겉으로만 만들어줄 수도 있기에 필요한 이야기였다. 대신 덧붙여 말한다.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걸어 나오면 아이들에게 정말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이 생긴다고, 그것을 믿고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이 생긴 아이가 공부를 진짜 잘한다고 어디 가서 큰 소리로 자랑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스스로 계획을 짜서 열심히 하는 것만 보아도 좋다.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그렇게 해나가면서 어떤 결과를 얻든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결과가 좋다면 그냥 보너스 받은 셈 치고 고마워하면 되는 것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은 공부에서만 빛을 발하지는 않는다. 그 힘을 생활 속에서도 연결시키고 살면서 결정해야 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나의 의견, 주변 어른의 조언을 충분히 들으면서도 결국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아이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결정한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고 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자기 주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헤쳐나간다. 그런 태도는 존경하는 그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진정한 “홀로서기”를 가능하게 하리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