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글쓰기 3

치열하게 쓰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

by 보름달

누군가 나에게 글쓰기를 왜 하냐고 묻거나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묻는다면 요즘 푹 빠져있는 정희진 작가의 책 제목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중학교부터는 모든 수행평가가 글쓰기와 관련 있다는 대답으로 학부모의 마음을 당기고 싶기도 하지만 진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정희진 작가 책에서 찾고 있다. 정희진 작가의 필력은 논할 필요도 없지만 책의 제목부터 뭔가 후욱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나는 글쓰기를 왜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제목을 먼저 살펴보자.

정희진 글쓰기 .JPG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 작가의 다섯 권의 책 중에서, 그 제목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 우선, 고학년 아이들이 자신을 알아가는 글쓰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제 좀 커서 다 안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생각하면서 타인이 아는 자기 모습 또는 그냥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 안에 살아있는 진짜 자신을 들여다보고 찾아보게 하고 싶다. 더불어 글쓰기를 하면서 사유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다. 나쁜 사람을 나쁘다고 인식하고 그들이 나쁜 이유를 쏟아 낼 수 있는 글쓰기를 하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쓰는 과정을 걸쳐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글 쓰는 즐거움만으로 설겅설겅 쓰면 뭔가 나아갈 수 없다. 물론 매일 글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치열하게 글 쓰는 과정을 겪길 바라는 것은 순전히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알지만 치열하게 글을 쓰면서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기를 자신을 알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주제를 주자.

아이에게 일기는 공책 한 바닥을 채우면 되는 어렵고 지루한 숙제이다. 특히 고학년이 되면서 사생활을 운운하면서 일기 쓰기를 거부하는 녀석들이 종종 있다. "그래. 사생활을 존중해주마." 하고 꺼내는 것이 바로 ‘주제 일기’ 다. 매일매일 비슷해서 쓸 것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 더 이상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 놓고 쓰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주제 일기는 환영받기까지 한다. 물론 처음에만.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시작으로 전쟁을 앞두고 가족에게 편지 쓰기’, ‘죽기 하루 전 유서 남기기’, ‘가족들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 ‘내게 친구라는 의미’, ‘진학/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등 생각하지 않으면 한 바닥을 채우기 힘든 주제를 던져본다. 주제 일기라는 말에 좋아하는 녀석들이 시큰둥해지는 순간이다. 그 속에 들어가야 하는 목록들을 나열하면 아이들은 기절직전에 다다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주제를 주면 우선 씨름을 시작한다. 안 쓰고 배 째라 하기에는 하루 종일 물고 늘어진 선생님이 지겨워서 쓰기는 써야겠으나 뭔가 쓰윽 쓰기에는 어려운 것을 왜 모르겠냐만은 모르는 척한다. 어떤 아이는 지식인에 주제를 올리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물론 지식인을 검색하던 다른 아이에게 들켜 슬쩍 고발하고 반 전체가 자기도 그러고 싶었다면서 웃고 끝나는 일도 있었다. 혼자 쓰기 어려우니 내주는 주제와 관련된 글을 엄청 찾아 읽기도 하고, 은근히 베껴오기도 한다. 티 나지 않을 정도만 베껴야 하는데 정도를 몰라 “각주”라는 단어까지 베껴오기도 한다. 혼내지 않았다. 혼낼 수 없었다. 대신 몇 퍼센트를 베꼈는지 자백의 시간을 갖고 50% 넘기지 않는다는 다짐의 시간도 가졌다. 스스로 검열하면서 고백하면서 아이들은 커갔다. 좋은 글을 베껴라도 오면 “필사”를 통한 공부가 되지 않는가. 그렇게 베끼다 보면 언제인가는 곧 자신의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혼내지는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은 순순히 몇 %가 남의 글인지 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하고 베끼는 것을 줄여나갔다. 가끔 나누고 싶은 주제는 모둠에서 서로의 글을 읽게 하였다. 서로 키득거리기도 했지만 숙연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를 알아 가면서 주변에 있는 친구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길러갔다.


자료를 찾아 뒷받침하게 하자

자료를 찾는 것부터 함께 해야 한다. 자료를 무턱대로 찾아오라면 아이들을 블로그, 카페, 나무 위키백과, 지식인에서 찾는다. 출처를 밝히라는 요구에 씩 웃으면서 내미는 자료는 거의 그렇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르친다. 어떤 사이트에서 어떤 자료를 조사해야 하는지, 기사를 활용할 때는 여러 신문사의 기사를 비교하면서 찾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고 신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역시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녀석들이라 한두 번만 함께 하면 그다음부터는 척척 잘도 찾아온다. 자료를 읽으면서 어떤 것을 자신의 글에 어떤 부분에 어떻게 넣어야 단단한 글쓰기가 되는지 스스로 생각해본다. 뒷받침하는 자료의 양이 많지 않아도 글쓰기에 잘 넣으면 자기 글에 신뢰감이 생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자료를 넣으면 양이 많아져서 자신이 써야 하는 부분이 줄어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자료나 정보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공유한다. 가르치기보다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글을 보면서 인용한 부분을 찾아보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글쓰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고 공간을 넓혀갔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면서 또 다른 친구의 글에서 배우면서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넓혀갔다.


치열하게 고쳐보고 다시 써본다.

아이들이 정말 싫어하는 부분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들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눈으로 쓰윽 보면 찾아낼 수 없는 어색함과 오류를 찾기 위한 방법이다. 그리고 어색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혹은 보충해야 하는 자료가 필요하다면 보충이라고도 쓴다.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그냥 줄을 긋는다. 빨간색으로 잘 보이게, 깔끔하게 쫙~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싫고 괴로운 것이 바로 고치는 작업이다. 탈고의 작업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쓰는 것보다 고쳐 쓰는 것을 더 힘들어하고 투덜거린다. 귀를 막는다. 그리고 그냥 돌진한다. 사실 꼬신다. 먹을 것으로 꼬시고 자유시간을 약속하면서 꼬신다. 숙제가 아니라 국어시간을 할애하여 고치게 하고 잘 고치면 먹을 것도 사주고 놀게도 해주면서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고치게 한다. 물론 적당한 협박도 들어간다. 다 쓰지 못하면 집에 못 간다면서. 그런 당근과 채찍만이 아이들의 글쓰기를 장려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느새 글쓰기의 매력을 조금 맛 본 아이들은 나에게 기꺼이 넘어가 주었다. 그렇게 한두 번 고친 글이 빛난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말이다. 정말이지 빛이 나서 눈이 부시다. 마치 애벌레가 고치가 되고 그것을 뚫고 날개를 펴는 것처럼 탈바꿈하는 아이들의 글은 아름답다. 정성이 있고 고통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말하면 변태라고 할 수 있지만 진짜 그렇다. 어려운 과정을 이겨낸 그들의 글쓰기는 아니 그들은 정말 아름답다.


글쓰기 작업은 쓰는 아이들도 봐주는 나도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과 일 년 동안 치열하게 글을 쓰고 나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린다. 일 년 후 아이들은 글쓰기 실력 향상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자라 있다. 생각도 마음도 훌쩍 자라서 깜짝 놀란다. 매해 모든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겪어보고 나면 아이들은 글 쓰는 자체에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해주는 든든하고 따뜻한 녀석들도 많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들은 솔직했고 보다 어른스러웠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제자를 넘어서서 친구이자 동생이자 스승으로 거듭났다. 그런 그들은 아름다웠다. 치열하게 글쓰기의 고통을 맛보면서 그 시간을 감내하고 날개를 펴준 아이들은 내게 종종 찾아와 준다. 삶의 힘든 시간을, 부모와 어긋나던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면서 고맙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글쓰기를 통해 나아가길 원한다.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알아가고 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힐 수 있다면, 삶의 기쁨과 고통을 글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글쓰기라는 좋은 친구를 만든 것만으로도 벅차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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