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말을 참 잘한다. 미디어의 영향 같기도 하고, 교육에 관심이 많아진 부모님의 영향 같기도 하다. 말을 잘하는 아이가 글을 잘 쓰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럼 책을 많이 읽는다고 글을 자연스럽게 쓰는가. 그것 역시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물론 말을 잘하고 책을 많이 읽은 아이일수록 글쓰기가 수월한 것은 맞다. 다 그렇지 않을 뿐. 그렇기에 책을 평소 잘 읽는 아이, 말을 너무 잘하는 아이는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기대를 갖고 보게 된다. 그 아이가 생각하고, 말하는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될 텐데 하는 마음으로 응원의 눈길을 보내지만 아이는 연필을 드는 순간부터 머뭇거린다.
“뭐라고 써요? 어떻게 써요?”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시작은 아이가 ‘말=글’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글로 써보라고 하면 의아해한다. 말과 글은 엄연히 다른 분야라는 것이다. 아이가 말이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글쓰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에서 소개하는 <우리 문장 쓰기>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어떻게 하면 근사한 글이 되도록 쓸까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말이 될까. 살아있는 말이 되도록 쓸까 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글 가운데서 말을 가장 잘 옮겨 놓은 글, 아니 말을 그대로 적었다고 할 수 있는 글이 소설이나 동화에 나오는 마주이야기(대화)다.
그럼 아이가 자기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적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처음 글쓰기를 가르칠 때 무작정 쓰라고 하지 않는다. 쓰기 전에 수다의 장을 연다. 같이 써야 하기 때문에 주제를 정한다. 우리가 함께 했던 하루 동안의 일 또는 지난 일 중에 즐거웠던 일들의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쓰고 싶어 하는 주제를 택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단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을 정도에서 서론-본론-결론에 들어갈 내용을 슬쩍 정해놓는다.
서론 :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있었던 일인가. 시작 전에는 어떤 마음/생각이 들었는가.
본론 : 그 일 중에서 나와 관련된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왜 기억에 남는가.
결론 : 그 일이 어떻게 끝났는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뭐가 마음에 들었고 들지 않았는가.
아이들과 글을 함께 쓰면서 끊임없이 떠들게 한다. 아이들은 글쓰기는 제쳐두고 그때 그 일에 빠져든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이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재잘거린다. 그 순간의 감정들을 떠올리면서 흥분한다. 나는 옆에서 장단을 맞추어 주면서 은근슬쩍 아이들이 말에서 관련된 문장을 풀어내고 찝어낸다. 이야기를 하고 나서 바로 쓰라고 하면 잘 쓸까. 아니다. 자, 이제 글쓰기를 해볼까 하면 아이들은 다시 얼음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말했던 많은 문장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 가뿐하게 첫 문장으로 제시한다.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여러 개의 문장을 써주거나 속사포로 말해준다. 그럼 아이는 신이 나서 골라 적거나 바꾸어서 적는다. 글쓰기의 사직이 가벼워진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기가 문장을 만들어 썼다고 믿는다는 것이 좋다. 사실 아닌가. 아이들의 수다 속에서 건져내어 첫 문장을 썼으니. 그리고 다시 묻는다. 그 일이 구체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어떤 마음이 들고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었는지 말해보라고. 그럼 아이들이 다시 열심히 말하고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골라 쓴다. 문장 만들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는 잘 듣고 있다가 자신이 쓰고 싶었던 것을 표현하는 문장을 골라 잡아 빠르게 연필을 움직인다. 아이들이 쉽게 쓰는 것도 좋은데 스스로 자신의 문장으로 생각하고 바꾸기도 하니 더 좋다. 그러면서 몸으로 느낀다. 말이 글이 되었음을.
집에서 글쓰기 지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일기를 숙제로 내주는 것에 대한 교사들은 진짜 많이 고민해야 한다. 아이랑 부모가 글쓰기로 씨름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대번 글쓰기를 싫어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숙제를 내주는 경우가 많아서 부모들이 알면 좋은 부분을 정리해본다. 뭐,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다만 교사에서 부모로 역할이 넘겨진다는 것밖에는.
집에서도 글쓰기 전에 아이와 충분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일을 정리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뭔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글쓰기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아이와 마음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그때 부모로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글쓰기를 넘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감이 생긴다. (사실 글쓰기보다 유대감과 신뢰감이 만들어지는 것이 쪼금 더 좋은 거 같다.)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쓰라고 하면 아이는 자신감을 쓸 것 같기도 하지만 한 문장 쓰고 쳐다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중간중간 툭툭 질문을 던져주면서 쓰라고 하면 수월하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하고 싶었어?” “그 옆에 있던 것은 누구야?”
“누가 어떤 말을 했어?” 등등..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우리 아이가 처음 써 내려가는 글을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고쳐주지 않아야 한다. 그냥 글씨를 쓰고 문장을 만들어 썼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해주면 좋겠다. 잘 쓰지 않아도 길게 쓰지 않았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솔직하게 썼다면 “애썼다.” 하면서 넘어가야 한다. 그게 어른의 너그러운 자세이며 따뜻한 글쓰기 환경을 마련해주는 첫걸음이다. 이 첫걸음을 잘 떼고 몇 걸음 더 걷다 보면 글쓰기의 순풍이 불어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학년의 글쓰기가 중요한 것은 글쓰기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 첫걸음이 부디 가볍고 즐겁고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