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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Sep 19. 2022

엄마의 따뜻한 밥상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엄마는 아직도 우리를 만나기 전에 어김없이 반찬을 다시 하고 김치를 다시 한다. 힘드니까 사먹자고 해도 굳이 반찬을 해놓고 기다린다. 가서 실컷 먹는 것은 물론 바리바리 싸주려고 참 많이도 만들어놓는다. 무릎 안좋다면서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면서도 돌아오는 길, 양손이 그득하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입맛이 까다로웠던 나를 위해 엄마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부터 다른 식구들과 다른 특별 반찬을 해주었다. 비지찌개를 싫어하는 나를 위해 따로 김치찌개를 끓여주고 다른 식구 몰래 계란 프라이를 해주기도 했다. 그런 따뜻한 밥을 먹고 자라서인가. 이 비딱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실히 덜 삐딱선을 탄 것 같다. 길을 벗어났다가도 엄마의 밥상이 그리워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랄까. 그러다보니 크면서 점점 밥을 먹는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늘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집밥이 떠오르는 것도 아마 엄마 덕분이지 않을까. 좋은 사람에게 차려 주는 밥상, 내 식구에게 차려서 내놓는 밥상에는 늘 조급함이 묻어있으며 엄마만큼 맛있지도 않지만 손에 마음을 담아서 따뜻하게 내놓으려고 한다. 그 안에는 내가 표현하지 못한 많은 애정이 들어갔음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따뜻한 밥상을 차리면서 나는 우리 딸들이 많이 어긋나지 않기를 바랐고 또 그러지 않은 딸들이 고마웠다.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삐삐 말라서 늘 밥을 덜어달라던 막내딸이 그리 안쓰럽고 짠했을까.


아직도 가끔은 엄마한테 해달라고 싶은 반찬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미안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무릎관절이 나가서 수술하고 나서도 딸내미 먹이겠다고 장조림을 해서 웃던 엄마의 까칠한 손이 생각나고 이제는 늙어서 반찬 하나 만들면 꼭 어느 정도는 쉬어야 다른 반찬을 만들 수 있다는 엄마 말이 맴돌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엄마한테 갈 때면 양손 가득히 뭔가를 사 간다. 엄마처럼 맛난 반찬을 만들지 못하기에, 시간에 늘 쫓기기에 큰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양손 가득 사간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고마운 마음을 갚아가는 것 같기 때문이지만 양손 가득히 싸간 것이 무색하게 더 많은 것을 싸가지고 돌아온다. 무한 리필되는 엄마의 마음을 어찌 따라갈까 싶다.


엄마의 따뜻한 밥상이 나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을까. 갑자기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가는 우리 아이들도 따뜻한 집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하루 한끼라도 부모님의 애정어린 마음이 들어간 밥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사춘기가 한참일 때도 따뜻한 밥이 먹고 싶어 집을 떠날수 없지 않을까 싶다. 밥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정성을 많이 먹고 자란다면 나이 먹으면서 언제인가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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