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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Feb 22. 2023

“호구”와트 교장의 사임 실패기

호구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지팡이 같은 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이 주문을 외쳐대던 시기가 있었다. 97~98년쯤 출판된 책을 시작으로 2001년 나왔던 해리포터 영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완결이 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삼성 휴대폰에 있는 빅스비에게 “루모스”라는 주문을 하면 플래시가 켜지는 것도 아직 해리포터의 인기가 시들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여간 그 열풍에 힘입어 영국에 가면 반드시 호그와트 마법 학교 수업 장소였던 글로스터 대성당, 변신술 수업이 진행됐던 더럼 대성당, 퀴디치 게임을 벌였던 앨런 성은 꼭 들려야 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어린아이들이 라면 누구나 그런 호그와트 학교에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20대였을 때도 그 학교에 다니고 싶었고 또 마법지팡이를 가지고 마법주문을 외우는 것을 꿈꾸었다. 그래서인가. 밖에서 바보같이 속고, 거절하지 못해 결국 일을 산더미처럼 맡아오는 나에게 남편은 “호구와트 교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호구가 어떤 의미인가.


호구 :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가 호구인 것은 맞지만 어수룩하지는 않다. 근데 왜 이용당할까. 매서워보이는 눈길과 딱 떨어지는 말투에 차가워 보이는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은 측은지심이다. 쉽게 동화되고 깊이 공감해 주는 능력을 타고난 탓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일처럼 흥분하고 가슴 아파한다. 온몸으로 같이 느낀다. 그래서 대신 싸워주기도 하고, 다 퍼주기도 잘한다. 임신해서 받은 선물인 아기 내복도 옆에 임신한 사람에게 주었을 정도니 뭐 할 말이 있겠는가. 카드사에서 나오는 영업직원들이 삐질 땀만 흘려도 카드 하나 만들어주는 것은 일도 아니고 보험도 보험사가 열심히 말하는 것이 짠하여 바로 들어주었다. 한두 번이 아니어서 우리 집 경제를 담당하는 남편에게 혼나고 취소하기를 여러 번이다. 누가 아쉬운 소리 하면 그 자리에서 옷도 벗어주는 나를 남편은 불안해했다. 파스를 등에 잔뜩 붙이고 남자선생님들과 똑같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나르며, 내 손이 아픈 것은 참으면서 다른 사람 손 아플까 봐 스테이플러도 대신 찍어준다.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자라온 환경 탓도 있다. 남에게 주는 물건은 내가 쓰는 것보다 좋아야 한다고 들으며 자랐으며 집에 하나밖에 없어도 남이 원하면 주는 아빠를 보며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그게 싫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다니 한심하다. 그런데 아직도 난 좋은 게 좋은 거지 한다. 싫은 소리를 하기 싫고 분명하게 따져서 분위기를 엄하게 만드는 것이 불편하다. 오죽하면 저럴까 하는 마음에 다른 사람의 부탁도 흔쾌히 들어준다. 그게 몸은 힘들어도, 손해는 좀 볼지 몰라도 마음만큼은 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특히 윗선에서는 툴툴 거리지만 맡기면 희생정신까지 발휘해 해내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만만하게 생각한다. 만만하지않아도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나에게 많은 일을 안긴다. 아주 자연스럽고 아주 당연하듯이. 행사가 있어 일을 할 때도 내가 쉬는 꼴을 못 본다. 여기저기 논땡이 피는 사람도 많건만 잠시 허리 핀 나를 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매번 불평불만을 달고 사는 사람이 뭔가 하나를 맡아주면 고맙다는 사람들이 왜 내가 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는가. 말하지 않는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한다고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다. 집에 오면 픽 쓰러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안쓰러워하는 가족들은 놀리듯이 이제 호구와트 교장으로 임명해 준단다. 그들이 내가 하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지않는 것은 내가 진짜 호구이기 때문일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묵묵하게 해냈을 뿐인데 뭐가 문제일까. 다들 내가 일하는 것을 보면서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한다. 학급에서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도, 학교에서 행정적인 업무를 하는 것도 노골적으로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사명감은 저쪽에 치워두더라도 월급을 받는 사람으로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책임져야 하는 일들을 들이미는 그 사람들은 뭐지 싶다.


  내가 문제인가. 아니 호구인 게 나쁜 것인가. 사실 생각해 보면 호구를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나쁜 것이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사기당하는 사람이 바보 같다고 한다. 자기 것을 챙기기 못하면서 남을 돕는 사람들, 이용당하는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호구라고 비웃는다. 착한 것이 나쁜 것일까. 이용당하는 것이 악한 것일까. 그러면서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거절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뻔뻔하게 청하는 태도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갑자기 화가 난다. 내가 문제가 아니다. 전국에 있는 호구가 문제가 아니다. 이용해 먹는 그들이 나쁘고 악한 것이며 비열하고 치사한 것이다. 나를 비롯한 호구들은 단지 측은지심이 많거나 착하거나 순진할 뿐이다. 이런! 전국호구들 단합대회를 해야겠다. 탈출하자고 다 같이 큰 소리로 외치자고 선동해야겠다.  

불합리하다는 마음이 들어서 참다가 참다가 절차를 논하는 나에게, 어렵게 거절하고 불편해 하는 나에게 예민해서 그렇단다. 정확한 것을 좋아해서 따박따박 따진단다. 조용히 처리할 때는 당연한 일을 한다고 여겼다가 호구가 고개 한번 들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저으니 마치 골칫덩이가 된 것처럼 말한다. 정색하고 기분 나빠하고 삐친 티를 낸다. 그러면서 본인이 문제를 제기하는 나를 참아준다고 험담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무서웠나. 마냥 예스를 외치던 호구가 변하니 무섭나. 사실 생긴 대로 하지 않으려니 불편하다. 측은지심을 누르고 못 본척하려니 좌불안석이다. 이미 몸부터 튕겨져 나가려는 것을 제압하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심호흡을 해본다. 나는 왜 호구와트 교장의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가. 그 자리가 너무 버거워서? 아니다. 다만 자꾸 밀려드는 요구와 뻔뻔스럽게 네가 하는 것은 당연한 거잖아라는 마음에 상처받는 것이 지겹기 때문이다. 하나 더 하는 것이 내게는 별 것이 아니다.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조차도 사실 없다. 그런데 상처받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일도 많이 하고 책임도 져야 하며 상처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너무 무겁지 않은가. 그래서 벗어나고자 엄청 노력하는데 참 쉽지 않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가정에서는 자기 것을 잘 챙기라고 할지 몰라도 교사로서는 아이들에게 선한 마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실천해야 함을 가르친다.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과 호구는 한 끗 차이일까. 난 잘 모르겠다. 다만 호구가 욕먹는 세상이니 그렇게 살지 말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다. 사람을 이용해 먹고자,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그들이 잘못된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선하게 일을 하고 나서도 스스로를 바보 같다고 탓하지 않길 바란다. 호구가 행복하게 일하는 사회를 물려주고 싶고 만들어주고 싶다. 그럴 힘이 없다면 적어도 호구를 비난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형성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호구가 상처받지 않는 사회를 열심히 생각하는 것을 보니 난 아직 호구와트 교장직을 내려놓지 못하려나보다. 다만 나는 나를 비롯해 내 주변의 많은 호구들에게 큰 소리로 격려해주고 싶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행동이 비난받을 거리도 조롱받을 거리가 아니니까 당당하자고. 우린 남들보다 좀 더 따뜻한 마음을 지녔을 뿐이니까 속상해하지 말고 어깨를 피자고 말하고 싶다. 동시에 그 마음을 악용하는 그들이 바로 문제임을 기억하고 자책하지도 상처받지도 말자고!! 그리고 사람들이 쓰는 호구의 뜻도 살짝 바꾸어놓고 싶다.


호구 : 공감능력이 뛰어나며 선한 마음을 지녀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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