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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Feb 20. 2023

마법의 문장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면 짙어진다.

  신혼 초에 남편과 무지 싸웠다. 분명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건만 사귈 때 친절하고 다정한 남편은 결혼 후 깜쪽같이 사라졌다. 남편왈 배려심 깊고 이해를 잘해주던 여자친구도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 그렇게 서로의 사라진 짝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변했다”라는 말로 함축한다. 지금도 미안하다고 말하면 지는 것 같아 잘못한 것이 없는 양 고집부린다. 물론 밥시간이 되면 밥은 먹어야 하는데 하는 불안감으로 남편에게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우격다짐으로 사과를 받아낸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남편이 나에게 더 많이 친절한 것도 알면서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이 애써 베풀어주는 그 많은 배려를 당연한 듯 받으면서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다. 고맙다고 하면 으스댈 것이 뻔함으로. 그런 나에게 가끔 남편은 고맙다는 표현을 요구한다. 남편은 알면 뒤집어질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교실에서 아이들과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세 마디를 달고 사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도 마법의 문장이라면서 사용하기를 장려한다. 마법의 문장만 있으면 정말 서로 오해하지 않을 수 있으며 크게 어긋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가슴이 아팠고 그다음에는 정부의 책임 몰기에 화가 났다. 나에게 딸들이 없고 학생들이 없었다면 그들을 다르게 봤을까. 부모로서 교사로서 가슴이 내려앉았다. 남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대통령은 5일이 지나도록 사과하지 않았다. 혹자는 말한다. 그 한마디가 뭐가 중요하냐고. 그리고 딸도 물었다.

 “엄마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에게나 친구들에게 학폭을 당한 경우, 피해자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것도 진심 어린 사과라고 한다. 그들이 변했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면 마음에 쌓인 것이 풀어질까. 어떤 사람은 사과로 변하는 것은 없다고 하지만 아니다. 사과는 실수 또는 잘못에 대한 인정이다. 즉,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것이며 앞으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무엇보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상처를 받은 것은 피해자 당사자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어 희생자 또는 피해자가 자신을 탓하고 자책하는데서 벗어나게 한다. 피해자는 피해만으로도 이미 감당할 수 없이 괴로운데 그 고통 속에서도 자기를 탓하게 된다. 마치 본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혹은 본인의 행동이나 결정에 의해 문제가 생긴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 부모와 교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쏟아내는 문장들을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말지 그랬어.” / “피하지 그랬어?” / “왜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는데?”

이 말들은 부모와 교사의 의도와 다르게 당한 아이에게는 2차 폭력이 된다. 결국 아이를 움츠러들게 한다. 당한 아이는 잘못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준 경우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사과하게 하고 나 역시 내 실수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건넨다. 학급에서 꼬맹이들의 잦은 다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사과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이 풀리도록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한다. 사과를 받는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느껴지냐고 묻는다. 무조건 괜찮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한번 더 사과가 필요하다면 요구하라고 한다. 또 사과는 받아줄 수 있지만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화가 풀릴 시간이 주라 한다. “미안해.”의 답이 “괜찮아.” 일 필요는 없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상대가 풀릴 때까지 눈치 보면서 기다리는 것도 미안한 사람의 몫이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도 필요하고 아이와 아이 사이에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아이는 순수하고 단순하여 “미안해.”라는 한마디에 서로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 미안함을 알고 표현하며 그 미안함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많은 부분에서 오해가 쌓이지 않는다.


고맙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이렇게 가르쳤더니 집에 있는 두 딸들은 본인들도 고맙다는 표현을 달고 살면서 나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 넘친다. 아이가 아프지 않은 것을 시작으로, 잘 놀아주는 것,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 나를 늘 먼저 안아주는 것, 내가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를 사 와주는 것, 사랑표현을 귀찮을 정도로 많이 해주는 것 등등.. 고맙지 않은 일이 없다.

교실에서도 그렇다. 작은 손가락으로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것, 매일 나를 그려주는 것, 등에 있는 흰머리카락을 떼어주며 늙었다고 걱정해 주는 것, 힘들어 보이는 날 살짝 안아주는 것, 아재개그에도 함박웃음 지어주는 것,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는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것, 와서 스스럼없이 수다 떠는 것 등 고맙지 않은 일이 없다. 아이들은 나의 “고맙다.” 한마디에 더 많은 열정으로 더 많은 사랑으로 나에게 다가와준다.

학부모와의 관계도 그렇다. 학기말에 서로 감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되자고 하는데 중간중간 열렬하게 지지해 주고 도와주시는 부모님을 느끼면서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고 긴 알림글을 꼬박꼬박 읽으면서 호응해 주면서 함께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종업식에 일부로 찾아와 안아주고 고맙다고 해주는 부모님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나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내가 쓴 글을 모아 편집해 주고, 댓글로 응원해 주는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고맙다고 여러 방법으로 표현해 주는 학부모님들에게 나 역시 진심으로 고맙다. 그래서 더 많이 노력하게 된다. 그 고마움을 바탕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표현하면서 서로에게 스며들어간다. 서로를 격려하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아간다. 찐한 고마움이 푹 담긴 한마디에 피곤이 사라진다. 노고를 인정받는 것 같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더 하고 싶어 진다.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서로의 진심을 느끼면 더 많이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일상에서 감사한 일이 많다는 것은 소소한 행복을 누리게 하는 일이지 않을까.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하고, 따뜻함을 흠뻑 느낄 수 있으며 미래를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은 “감사함”이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말로 표현함으로 힘을 실어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말의 힘을 믿는가. 사실 다른 말의 힘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미안하다.” 와 “고맙다.”가 사람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한다. 수많은 나의 아이들과 학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얻은 경험에서 느낀다. 작은 한마디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소소하게 건네는 그 말로 인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신뢰감이 만들어진다. 서로를 인정해 주며 존중해 주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종업식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두 마디를 했다. 혹시 의도하지 않게 선생님이 상처 주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너희 잘못이 컸다기보다는 너희가 잘 자라기 바라는 선생님의 욕심이 컸기에 더 세게 나갔음을 인정한다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고 좋아해 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하굣길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안아주는데 한 아이가 말했다.

 “왠지 눈물 날 것 같은데……”

내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아 나 역시 울컥했다. 그래서 더 진하게 안아주었다. 진한 나의 마음을 가득 담아 사랑을 고백했다. 수리수리마수리보다 더 강력한 마법의 힘을 담은 두 문장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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