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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Feb 19. 2023

사고뭉치들과 사고문치

문제를 삼아야 하는지 장하게 여겨야 하는지 때로는 헷갈린다.

  교실 이사를 하고 청소를 했다. 하루가 힘들게 느껴지는데 운동한다고 억지로 힘을 내어 걸어서 퇴근했다. 퇴근길에 남편을 우연히 만나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조용한 집안이 이상하다고 여겨질 때 큰 딸이 쭈빗쭈빗 나왔다. 죄지은 멍뭉이처럼.


  “또 잤어?” (조용하여 문을 열어보면 잠자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는 아이라.)

  “아니, 그게 아니라……”

  “고양이는?” (우리 둘째 애칭이다.)

  “엄마 방에……근데 있잖아요~”


내 방을 들어가는데 약간 길을 막아서는 아이가 영 수상쩍다. 뭐지 하는 불안감에 성큼 내디뎠는데 첫째가 얼른 따라 들어온다. 안방 화장실 쪽에서 둘째가 포기하듯이 말한다.


  “에휴~ 언니, 그냥 말하자.”


화장실 문 아래가 주먹만큼 뚫렸다가 메꾸어져 있었다. 사방팔방에 수성페인트가 묻어 있고 좁은 화장실 안에는 락커와 스티커제거제 냄새로 가득 차있었다. 화장실 바닥에는 페인트붓과 수성페인트, 알코올솜이 널브러져 있고 자세히 보니 아이들 옷에도 페인트 투성이다.


  급발진, 아니 분노가 폭발했다. 여기저기 바닥에 묻어있는 페인트도 기가 막힌데 여러 화학냄새가 섞인 작은 화장실에 앉아있는 둘째를 보니 큰 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찔했다. 상황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둘째가 약 올리고 우리 방 화장실로 생쥐처럼 쏙 들어가 문을 잠궜을 것이며 열받은 큰 아이가 곰처럼 문을 뻥 찼으리라. 큰 아이는 약간 놀랐겠지만 엄마아빠 몰래 해결가능할 것이라고 흥미로운 마음으로 둘째를 꼬드겼을 것이며 둘째는 얼른 인터넷을 뒤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아~ 보지 않아도 보이는 이 상황에 뒷목을 잡았다. 갱년기도 아닌데 감정조절이 안 되는 요즘, 눈에서 불이 나오고 목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곁에 있던 남편도 화가 났으나 집 나간 이성으로 눈이 돌아간 나를 말리기 위해 집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아이들더러 씻으라 했다. 씻고 나와서 바닥부터 닦으라고 하는데 더 열받아서 소리를 질렀다. 문이 부서진 것보다 힘든 몸으로 바닥을 닦고 정리해야 한다는 좌절감에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대부분 정리를 했고 나는 마무리로 걸레질을 했다. 아이들이 도우려 했으나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정리를 끝낸 우리 부부는 소파에 쓰러졌다.


  무엇에 화가 그리 났을까. 딸들의 안전? 사고 치고 전화하지 않은 것? 스스로 해결하려다 더 크게 사고 친 거? 무지 복합적인 마음이었겠지만 잠깐 잠을 자고 나보니 어이없음에 웃음만 난다. 남편은 브런치 글감이 생겼다면서 나를 위로했지만 그때까지 분노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짜증을 냈다. 사실 장난질이야 어쩔 수 없는 집안 내력이라 혼낼 거리도 아니었다. 문을 부순 것은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부모인 우리에게 바로 연락하지 않은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사고를 치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 것에 대해서만은 화를 내지 말았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땜질이 어수룩하긴 하지만 2시간 넘게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려 노력한 것은 잘했다고 말해야 하나 헷갈렸다. 육아만 17년인데 아직도 뭐가 옳은 선택이며 방법인지 모르는 것이 많다. 역시 육아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잊을만하면 알려주는 우리 딸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어쨌든 좁은 공간에서 화학용품을 위험하게 사용한 부분과 엄마아빠에게 바로 이실직고하지 않은 죄는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밥을 먹으면서 한번 더 이야기했다. 해결해보려고 한 것은 좋으나 어떤 일이거나 생기면 바로 알려야 한다는 것을 귀에서 피가 날 때까지 말한 거 같다. 이미 분노의 화산을 터트린 부부 앞에서 아이들은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고 오래간만에 조용히 밥을 먹었다.


  다음 날, 집에서 둘째와 점심을 먹는데 둘째는 문이 부서졌는데 언니 발이 다치지 않은 것은 신기하다고 하며 웃었다. 워낙 위기감이 짧은 초긍정자아를 지닌 둘째라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이해되었다. 엄마아빠 혼낸 거야 이미 아주 오랜 과거 이야기일 뿐이고 이제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사건의 하나가 된 것이다. 첫째의 튼튼함에 같이 감탄을 해주었다. 저녁에 학원에서 돌아온 큰 아이가 나에게 안기면서 아직 화났냐고 하길래 아니라 했다. 그랬더니 고백했다.


  “엄마, 사실 문에 이름을 만들어줬어요~ 동생이랑.”

  “헐~~ 뭐라고 이름 지었는데?”

  “사고문치”

  “사고뭉치?”

  “아뇨. 사고문치요. 너무 귀엽죠?”


아휴. 화낸 것이 뭔 소용인가. 다음부터 사고를 치면 바로 전화를 하리라는 작은 약속만 생겼을 뿐이지 그 이상의 효과는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장실 문만 보면 이제 웃음이 나온다. 어떤 사고를 치고 나서도 혼난 지 하루도 안되어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추억거리로 생각하는 그 모습을 긍정적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철딱서니가 없다고 등짝스매싱을 날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이없어서 그냥 웃는다. 아무 일 없듯이 부서진 문에 이름을 붙여주고 옆에서 뒹굴거리면서 수다 떠는 딸들을 보며 그냥 웃는다. 내 얼굴에 주름살은 하나 더 생기고, 어떻게 키워야 맞는 것일까 의문점 하나를 남겼지만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딸들이 있어서 웃는다. 성장한다. 아니,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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