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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24. 2023

동등한 관계

프레임 없이 아이들과 서로 존중하면서 지내고 싶다. 

  "선생님, 선생님 딸들은 선생님 안 무서워해요?"

  "응. 나보다 아빠가 더 무섭대."

  "헉... 그럼 선생님 남편은 얼마나 무서운 건데요?"


  아이들을 만나고 친해지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렇다. 나는 엄한 교사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예의범절과 질서를 강조하다 보니 엄하다고 소문났다. 물론 버럭 하는 큰 목소리와 급한 성격도 한몫을 단단히 했으리라.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에 누가 있거나 없거나 혼내야 하면 혼낸다. 부모가 옆에 있어도 해야 할 말은 꼭 했다. 평소 웃고 장난하다가 정해놓은 선을 넘어서면 떨어지는 불호령에 아이들은 언다. 사실 그래놓고 마음 약해져서 아이들 마음을 은근슬쩍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집에 가기 전에는 꼭 안아준다. 마음 약한 나는 혼내고 나서 아이들 눈치를 꽤나 본다.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한다. 이런 마음을 알아서 그런지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유롭다. 은근히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민초가 싫다는 나에게 몇몇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한마디 했다. "개취입니다." 싫은 것 또한 나의 개인취향이라고 맞받아치면서 웃었지만 교실에서 나는 종종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지적을 받는다. 그게 불편하지 않다. 그렇게 보면 그다지 엄하거나 권위 있는 교사는 아닌데 도대체 교사로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신규교사들에게 늘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어떤 교사가 되고 싶냐는 애매모호한 질문에 많은 젊은 교사들은 친구 같은 교사를 되길 원한다. 어떤 교사들은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뭉뜨그러진 대답을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떤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참 대책도 없고 틀도 없는 사람이라 딱 떨어지는 대답은커녕 애매모한 대답도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에게 물으면 엄하되 따뜻하다고 하고, 권위적이지만 노력하는 교사라는 말도 듣는다. 또 어떤 사람은 꼼꼼하나 약간은 불친절하다고 평가한다. 나도 내가 어떤 교사라고 진단 내릴 수 없기에 그들의 평가를 뭐라 하지 않는다. 그 조각조각이 모여 퍼즐 맞추듯 맞추어질 때 "나"라는 사람, "나"라는 교사겠지 싶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너는 어떤 교사로 성장했냐고, 작년보다 무엇이 나아졌냐고, 존경하는 누군가를 닮아가고 있냐고. 성장을 멈춘 채, 나아가는 것을 잊은 채 그렇게 나이만 먹는 교사가 될까 봐 묻는다. 돌아본다. 

나이를 먹을수록 저렇게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지, 고인 물이 되지는 말아야지, 위에서 아이를 내려다보지는 않아야지 등등 배우고 싶은 모습보다 저렇게 늙지 않아야지 하는 경계심이 생긴다. 그래서 그 답을 아이들에게서 찾는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 아이들을 만나는 해가 늘수록 도리어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많음을 인정한다.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충분히 쌓이고 나면 함께 자유를 누린다. 나이라는 훈장, 교사라는 계급장을 떼고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그 시간이 되면 더는 가르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나눈다. 마음을 나누고 지식을 찾아가는 방법을 나누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들을 모은다. 


  아이와 동등한 관계로 만나는 것은 행복이다. 처음 만나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존중의 마음이 길러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노란 손수건을 나무에 매고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 준비가 되면 나는 교사라는 직분에서 벗어나 한 명의 사람으로 그들을 만난다.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논한다. 그 순간의 짜릿함과 벅차오름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다. 자유롭다. 그들과 함께 거니는 그 순간, 날아오를 듯 자유롭다. 교사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 명의 성장하는 사람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만나는 아이들과 나, 계속해서 그런 관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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