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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29. 2023

보는 눈, 받는 마음

보는 눈을 기르고 잘 받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를 찾는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는 우선 내 아이, 내 새끼로 인지한다.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 교사의 차별이 얼마나 끔찍한지 경험했기에 최선을 다해 모든 아이를 고루 사랑하고자 한다. 아이마다 사랑스러운 점이 다르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같은 양의 사랑과 열정을 쏟아도 아이에 따라 그 아이에게 흡수되는 사랑과 가르침의 양이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내가 주는 사랑 그 이상을 진심으로 흠뻑 받아가는데 어떤 아이는 '무지개 반사'로 사뿐히 그 모든 것을 튕겨낸다. 그리고 상처받은 얼굴로 앉아있다. 그럴 때는 안타깝고 답답하다. 똑같이 사랑하고 있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같은 말, 같은 행동에 부여하는 의미가 달라서 아무리 내가 같은 양의 관심을 주어도 관심으로 받지 않고 미움을 바탕으로 한 잔소리로 받는다. 그래서 깨닫는다. 좋은 스승은 그 사람 자체가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일 수 있지만,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알아볼 수도 만날 수도 없을지 모른다. 유명한 노래가 누구에게나 18번지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 주는 것을 받지 못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도루묵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과 친해지고 나면 호소한다. 모두 공정하게 대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과 개개인을 다른 방법으로 이끌고 사랑하고자 하니 제발 마음을 열고 받아달라고 진하게 고백을 한다. 이 고백마저 위선으로 여기고 반사해 버리면 수가 없다. 그냥 그렇게 1년을 보내는 것이다. 결국, 싫지도 좋지도 않은 교사 혹은 깐깐하고 잔소리 많은 교사 아래 일 년을 버티었다고 말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교사도 그걸 털어낼 재간이 없다. 

사랑이나 가르침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보다 그 사람의 모든 마음과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잘 받고자 하는 받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살면서 아직 진정한 스승이나 어른을 아직 만나지 못했거나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진짜 없는지 아니면 자기가 튕겨내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를.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자신의 몫이다. 물론 기꺼이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갖기 전에 스승으로 삼고 싶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 


  사실 나는 눈이 나쁘다. 시력도 떨어지는데 동체시력도 좋지 않아 움직이는 공이나 사람을 포착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거기다가 관찰력까지 부족해 어떤 물체를 봐도 그게 무엇인지 인지하는데 꽤 오래 걸린다. 반면, 몽골인의 시력을 가진 언니는 관찰력도 좋고 동체시력도 뛰어나다. 그런 언니와 걸을 때 언니가 갑자기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지른다. "저것 좀 봐." 라면서. 그럼 바보같이 난 어김없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쳐다본다. 정말 오래 자세히 봐야 그게 무엇인지 안다. 대부분 토사물이거나 작은 동물의 사체인데 그 더럽거나 징그러운 장면을 왜 혼자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가 하는 불만도 잠시 내 눈을 탓한다. 그렇게 저질적인 육체적인 눈을 보완해 주려 신은 나에게 사람을 감각적으로 알아보는 눈은 주셨나 싶다.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잘 보고 정말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판단한다.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친하게 지낼 사람과 사회생활을 위해 그냥 잘 지낼 사람, 아예 벽을 쌓고 지내야 하는 사람을 구분해 낸다. 일종의 방어벽일 수도 있다. 더 상처받고 싶지 않음 마음이 길러낸 능력일 수 있다. 차별받은 경험과 예민한 기질이 모여 만들어낸 '눈'일 수도 있다. 물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살면서 몇 번 사람에 데이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감각적인 눈을 십분 활용해 좋은 사람들을 고르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선택해서 사귀면 무조건적으로 믿고 나눈다. 진심으로 배우고 느끼며 의지한다. 

  사람 보는 눈, 중요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무한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며 멘토로 삼고 의지하며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서 온몸의 감각을 끌어올려 사람 보는 눈을 발달시켜야 한다.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생기는 경험에 주눅 들기보다 나는 보통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선택하는지 분석하면서 사람에 대한 기감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누굴 만나 무엇을 하냐에 따라 삶은 여러 색깔로 채워진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삼느냐에 따라 생각의 그릇과 방향이 달라진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지만 누구 곁에서 얼마나 노력하냐에 따라 사람을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 것은 자기 주변에 진심으로 자기를 대하는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고 또 있다 해도 받을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나를 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판단 후에도 끊임없이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자 노력하여 상대의 애정과 그로 바탕으로 한 많은 말과 행동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드디어 변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스승은 있다."  


결국 내 곁에 좋은 인연, 좋은 사람, 좋은 스승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내 딸들이 그리고 내가 만나는 우리 아이들이 좋은 스승을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기에 그들이 그 복을 누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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