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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22. 2023

 낙법을 배울 기회

잘 넘어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낙법은 유도나 체조뿐 아니라 스키, 인라인 등의 스포츠를 배울 때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이다. 모든 운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낙법이 필요한 이유는 자명하다. 나가떨어지거나 넘어지는 경우에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자기 몸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으로 어쩌면 수 없이 넘어질 수 있다는 암시일지 모른다. 그리고 잘 넘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것이다. 낙법을 배운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큰 부상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통증은 있으나 부상까지 가지 않는 법, 우리 인생에서는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살면서 넘어지는 법을 배운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없다. 아무도 나에게 잘 넘어지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다. 물론 생존수영을 위해 깊은 물에 던져서 헤쳐 나오게 하고 높은 비탈길에서 밀어 자전거를 배우게 한 강한 교육법을 시전 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웬만한 상처에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지만 내 몸을 온전히 보호하면서 넘어지는 방법은 몰랐다. 다만 많이 넘어지고 수없이 피나고 멍들어보니 다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었다. 가뜩이나 성향상 두려움이 많지 않은데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경험은 넘어지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을 키웠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자란 나는 딸들이 어렸을 때 무릎이 까지고 상처가 나도 “피난다고 안 죽는다.” 고 말하면서 넘겼다. 눈물을 그렁거리던 딸들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엄마를 보며 더 울지 못하였고 넘어지는 것에 무던해졌다. 울기보다 툭툭 털며 일어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미련했는지 알게 되었다. 맨땅에 헤딩은 나 하나로 족해야 했는데 아이들마저도 몸으로 깨닫게 했던 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고 후대도 고생시키나 보다. 낙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주었다면 덜 아프고 덜 다쳤을 텐데 이제와 후회스러운 부분도 있다.

  몸만 아팠을까. 마음도 매한가지다. 무조건 부딪쳐보라 했다. 두려움에 대해 이해해 주거나 다독이기보다는 그냥 해보라고 밀었다. 몇 번 넘어지고 다친다고 죽지 않는다 했다. 견디는 법이나 상처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미처 알려줄 생각을 못했다. 넘어진 아이를 안아주고 같이 아파했지만 실패에 대해 어떻게 스스로를 다독여야 하고 자기의 안전을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할지 사실 나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기에 다소 무식한 방법으로 체득하고 체득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살면서 넘어진다. 넘어질 일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경험해야 한다. 아이를 평생 온실 속에서 살게 할 수 없고 온몸과 마음에 쿠션을 둘러줄 수도 없으며 매번 쫓아다니면서 보호할 수도 없기에 충분히 넘어져봐야 하는 것은 맞다. 실패해도 그것이 반드시 실력이 모자라서도 잘못해서도 아님을 인지해야 괜찮을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실패를 겪으면서 점점 둔감 져야 한다. 여러 번의 실패가 결코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겁먹고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 실패하고 넘어진 채 주저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 전략을 짜 볼 수 있다면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어머니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넘어졌을 때, 너무 아파서 세상이 까맣게 보일 수 있다. 몸과 마음에 오는 통증에 혼미해질 수도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때 옆에 손잡아 일으켜주는 부모 또는 좋은 사람들이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안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넘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쉴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게 낙법 아니겠는가. 잘 넘어진다면 큰 부상까지 가지 않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 아이는 실패를 혹은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최선이 아니라 최고를 바라는 사회의 시선은 아이들에게 이기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잘했을 때 돋보이고 칭찬받는 아이는 더욱더 이기는 게임만 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늘 자기 수준보다 낮은 것을 선택하고 쉬운 길을 찾는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가만히 앉아있고자 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실패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지금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폐해 아닌가. 지면 안되냐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넘어지면 일어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있을 것이냐고 묻는다. 일어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해야 한다. 손을 내밀어주고 툭툭 흙을 털어주며 밴드를 붙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넘어진 원인과 안 넘어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게 하고 또 그 모습을 지켜봐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넘어진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해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넘어졌을 때 생기는 상처에 같이 아파해주되 밴드를 준비할 수 있게 알려주고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도와주는 어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넘어지지 않게 하는 것보다 잘 넘어지는 법을 익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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