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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17. 2023

자궁이 없는 자

성에 대해 솔직하게 담담하게 말을 나눈다.  

  여자 셋, 남자 하나.

드라마 제목이 아니다. 우리 집 구성원의 성비이다.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굴하는 않는 남편인지라 별 영향이 없을 듯했으나 아이들이 커갈수록 남편은 소수자로의 서러움을 겪고 있다. 딸들은 충분히 자랄 만큼 자랐어도 아빠와 별로 내외하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나온 지도 얼마 안 되었다. 아직도 가끔은 샤워를 하고 "아빠" 하고 외친다. 아빠가 대답하면 "아빠, 나 나가요~" 한다. 벗고 방으로 뛰어갈 터이니 그동안 방에 들어가 있거나 눈을 감으라는 일종의 신호다. 설마 하지만 설마는 늘 사람을 잡는다. 거침없는 행보에 민망하고 부끄러운 것은 오롯이 남편의  몫이다. 제발 가운을 걸치고 나오라고 애원을 한다. 그럼에도 아이가 화장실에서 "아빠"를 부르면 불안해서 눈을 질끈 감는다. 그뿐이랴.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으면 되는데 굳이 문을 활짝 열고 아빠에게 보지 말라고 명령한다. 남편은 어이없어하며 코웃음을 친다. 본인도 보고 싶지 않으니 문 닫고 갈아입으라고 큰소리도 치나 별 소용이 없다. 가끔은 아빠가 남자인 게 잘못인양 뻔뻔스럽게 행동한다. 어느 날, 남편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큰 딸에게 뭘 가져다 달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랬더니 큰 딸이 아빠를 째리면서 말했다.


 "아빠는 자궁이 없어서 잘 모르나 본데 나 지금 생리해서 힘들거든. 아빠가 자궁 있는 사람의 고통을 알아?!"


우리는 처음에는 벙쪘다. 그다음에는 빵 터졌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은 큰 딸의 똘기일까 아니면 성에 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표현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뒤로도 종종 "자궁도 없으면서"라는 말은 회자되고 있다. 딸이 뭔가를 부탁하거나 말하면 남편은 질세라 "아빠는 자궁이 없어서 못해. 몰라."라고 답한다. 이처럼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 쉽지 않다.

   

  많은 부모들이 어떻게 성에 대해 접근할지 모르겠다고 한 것이 떠오른다. 성에 빨리 눈을 뜨는 아이들이 걱정은 되나 어떻게 말할지 몰라 몇 명을 모아 성교육 강사를 섭외한다고 한다. 성교육을 따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평균 성관계 시작 나이가 13.6세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태국에서는 고등학생이 임신하면 퇴학이나 전학처리를 불허하고 출산휴가까지 허용한다는 기사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부모들이 전문적인 성교육 강사를 섭외하고, 아이들은 조금 이른 나이에 성관계를 시작한다는데 왜 아직도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가. 청소년의 성관계가 마치 죄인 것처럼 몰아가는 이유는 뭘까. 성교육은 왜 아직도 구태의연 내용으로 번복되는가. 아, 물론 나 역시 학생들의 성관계는 반대하고 싶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그 밖에도 공부해야 하는 시기에 다른 것에 빠질까 하는 걱정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임신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알고 있다. 나 같은 꼰대가 많아질수록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성 문화는 음지화될 것이라는 것을. 자꾸 금지하고 억압하다 보면 건강하지 않은 양상들이 더 많아지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뭐라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두 딸의 엄마이면서도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교사라서 그런가 보다.

     

집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면 어떨까.      

성교육전문강사를 못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성지식이 얼마나 되는지 확신할 수 없는데 여러 아이들이 모여 중간지점의 지식을 배우게 한다는 것은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어떤 아이는 강사의 말에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다. 또 평소 가지고 있던 궁금증이 해소될 수도 있지만 어떤 아이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일회성으로 그치기에 그 효과를 알 수 없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아이들은 쉽게 성에 대해 듣고 본다. 성교육 관련 만화책도 많고 사춘기와 관련지어 나오는 책도 꽤 많다. 그렇기에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성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더 이상 부모의 역할은 아니다. 평소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묻고 또 답하면서 성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 이제 성교육은 성에 대해 알려주는 것보다 성에 대해, 성관계에 대해 바른 가치관을 세우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보수적인 나는 그런 부분에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고자 노력한다. 성관계에 대해 규제하기보다 책임을 강조하고 의식을 갖고 행하면서 자기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그러지 않을 거야 라는 마음, 아직 청소년인데 그러면 안돼 라는 마음은 아이와 부모 사이에 벽을 쌓는다.  


청소년의 성문화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세상이 달라져 가고 아이들도 다르게 커가는데 사실 청소년을 존중하기보다 아이 취급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보호받아야 하겠지만 보호 속에는 존중이 바탕되어야 한다. 성에 관해서도 ‘어린것이~’라는 시선보다 그들만의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성관계를 무조건 제지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몰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 그들과 소통하고 현시점의 성문화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들을 프레임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려면 사실 청소년들보다 어른이 더 용기를 내야 한다.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접고 우리 아이는 순수할 거야라는 믿음 대신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들을 한 명의 독립체로 인정해 주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르치거나 훈계하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가르치려고만 한다면 아이들은 숨는다. 성에 대해서 특히 더 그렇다.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두 딸의 엄마로 성에 대해 고민이 많다. 어디까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보다 어떤 시선으로 청소년의 성문화를 바라봐야 하고 어떤 마음을 갖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성에 대한 교육은 “성” 그 자체로의 의미는 이제 없다. “성에 대한 건강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니어도 성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은 너무 많다. 과장된 것도 왜곡된 것도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임신한 여고생을 보면서 나 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딸이 저런 상황에서 엄마는 어떻게 할 것 같냐는 질문에도 뭔가 가슴이 툭 내려앉는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은 비겁함 때문이고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딸의 질문에 가슴이 쿵 했다는 것은 아마 나 역시 '내 딸은 설마...' 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닐까. 속상하리라. 인생을 망치는 것 같아 눈물나리라. 하지만 그 아이가 확신을 갖고 있다면, 책임감을 갖고 한 생명을 키우고자 한다면 응원해주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본다. 아니 다짐을 해본다.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나 역시 그냥 평범한 엄마이기에 오늘도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터놓고 이야기하고자 노력한다. 성도 결국 서로에 대한 존중이 먼저임을 기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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