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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15. 2023

부모는 아이의 스승

아이의 첫 스승이자 영원한 스승이 되는 길을 찾아봐야 한다.

  



  벌써 10년도 넘은 공익광고가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학부모인가 아니면 부모인가. 아이가 입학하기 전에는 당연히 부모임을 의심하지 않았고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학부모는 아니었다. 욕심 많은 부모이기는 했지만 공부보다는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이 되길 강조했던 것 같다. 딸들이 중학생이 되고 또 고등학생이 되면서 순간 학부모가 될 뻔했다. 그러나 어느새 머리가 크고 고집이 생긴 딸들에게 학부모 명찰을 단 내 모습을 보여주어도 엄마가 학부모가 된다 해도 자긴 별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바지런하지 못하고 끈기 없는 나는 끝까지 학부모 노릇을 할 수 없었으리라. 분위기에 휩쓸릴뻔했지만 계속 학부모를 하기에 정보도 부족하고, 지구력도 딸리며, 무엇보다 공부는 지가 해야지의 마음 때문에 등을 밀지 못하기에 학부모는 못하겠다. 그렇다면 부모 노릇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싶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끊임없이 가르치게 된다.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수천번 수만 번 반복하고 되뇌면서 가르친다. 아기가 배밀이를 하면 안타깝고 대견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발을 밀어주고 앞에서 딸랑이를 흔들면서 기어갈 수 있게 동기부여를 끊임없이 한다. 지칠 틈이 없다. 비틀비틀 겨우 일어서는 아이가 한 발짝 내딛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응원한다. 그때 부모는 결코 아이에게 "엄마" "아빠"를 불러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한 걸음을 스스로 내디뎌보라고 등을 떠밀지 않는다. 다만 기다린다. 아기의 입을 보면서 언제 저 작은 입이 날 부를까 기다리고 혹시나 넘어질까 염려하면서 아이의 발을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리고 쳐다본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해내면 벅차오르는 가슴에 박수를 치고 기뻐한다. 아이가 말을 틔우기 전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또 손을 잡아주며 걷게 도와주는 부모야말로 아이의 첫 스승이 아닌가. 단순히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들여 보여주고 들려주면서 끌어주며 정성스럽게 시간을 쌓아 올린다. 부모라는 이름은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칠 수 없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없다. 삶 그대로를 보여주는 가르침이기에 부모도 아이가 생긴 이후로 말과 행동을 정제해 나간다. 나보다 잘 살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넘어선 그 이상의 것을 투여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부모의 영향을 받고 양분을 얻어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는 아이의 첫 스승이 되어주지만 끝까지 스승으로 남을 수 있는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부모는 첫 스승의 모습을 잊는다. 한쪽으로 치워둔다. 생활 속에서 가르쳐야 할 것도 많은데 학교에 가면 지식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도 많다. 비교당하기 쉬운 학교에서 마치 부모는 아이가 잘하지 못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성급한 마음에 화를 내고 또 자잘한 지식들을 가르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한다. 최고의 결과를 원하고 지금 당장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다른 아이가 뭔가를 배운다고 하면 내가 놓치는 것이 없는가, 이게 옳은 길인가를 한없이 고민한다. 기다려주는 여유를 빼앗긴다. 그렇게 흔들리는 순간, 스승의 자리가 아닌 학부모 또는 선생의 자리에 앉아있게 된다. 자잘한 잔소리는 멀리 보고 방향을 잡아가게 하지 못하고 어떤 이야기도 들어줄 거라는 믿음을 상실하게 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많아지나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길을 걸어주는 사람은 줄어든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부모는 스승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스승은 누군가를 이끌어서 가르쳐주는 존재 이상이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고 의논할 수 있으며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이다.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서로를 배우는 관계이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예전에 '스승'은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존재로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에게 진정한 스승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이지 않을까. 좋은 어른으로 함께 시간을 누리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곁에 있어주는 스승은 부모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부모의 자리, 스승의 자리는 내놓고 학부모의 자리, 선생의 자리로 찾아가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 아이에게 선생은 많다. 그러나 좋은 스승은 적다. 인생에 있어서 멀리 바라보며 꿈을 꾸게 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스승이 되어주어야한다. 나 역시 내 아이에게 부모이자 좋은 스승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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