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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10. 2023

순간의 최선

결과와 상관없이 마음을 다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체육대회가 열렸다. 아이들 모두가 좋아한다고 하였지만 사실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체육대회는 괴롭다. 특히 운동실력과 결과가 한눈에 들어오고 비교당하는 종목 "달리기"는 호불호가 명확하다. 일반 달리기보다 계주는 더 그렇다. 졌을 때 비난이 쏠릴 수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미안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잘 뛰지 못하는 것이 잘못은 아닌데 괜히 주눅 든다. 이런 아이들 마음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변호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이라면 담을 쌓고 지내던 나의 유년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키가 작아 제일 앞에서 매스게임을 하다가 몸치라는 이유로 선생님이 뒤로 빼는 수모를 당해 모든 운동에 자신감을 잃었다. 재미를 붙이기도 전에 몸치라는 것이 들킬까 봐 두려웠다. 어쩜 내가 다른 운동보다 걷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기능 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비교당하지 않아도 되고 승부욕이 발휘되지 않아도 되는 "걷기"가 난 참 좋다. 나이 들어서 어쩔 수 없는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운동을 잘하지 않아도 좋아할 수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잘하지 않아도 즐길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체육대회나 운동회 같은 것을 할 때 "최선"을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운동신경이 없는 아이들도 최선을 다했을 때는 그 노고를 인정받게 하여 모두가 즐거운 운동회가 되었음 한다.


 "앞머리 잡고 뛰지 않기", "뛰면서 뒤돌아보지 않기", "바통 놓치지 않기", "뛰고 나면 죽을 것처럼 힘들기", "승부에 상관없이 끝까지 열심히 뛰기"


 우리 반 달리기 규칙이다. 다른 반과 계주를 할 때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뛰고났는데도 숨에 여유가 있고 말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아이들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 서늘하게 말한다. 잘 뛰는 녀석들은 조금 억울할 수 있지만 잘 뛰는 것보다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미친 듯이 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승부욕 넘치는 선생님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에 만족하겠다고 약속한다. 진짜 그렇다. 막상 계주가 시작되면 흥분해서 나는 "뛰어, 뛰어"를 목청 터져라 외치고 잘 뛰지 못하는 녀석의 이름을 부르면서 같이 뛰기도 한다. 승부욕에 그러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을 때 후회가 남지 않음을 알게 하고 싶고 때로는 좋은 결과를 동반하지 못해도 즐거울 수 있음을, 벅차오를 수 있음을 알게 하고 싶다.


  살다 보니 타고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노력만으로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애써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포장한 선물과 언니가 휘리릭 포장한 선물의 급이 다른 것을 보면 그렇다.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젬병인 운동실력이나 미술실력이 월등하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예 포기하고 재쳐두는 것보다는 순간순간의 노력이 쌓이면 아주 쬐금씩이라도 나아진다. 몸치라 포기했던 몸의 유연성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오래 걷기를 통해 저질 체력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타고남을 이겨내지 못할 수는 있지만 가지고 태어난 것에서 늘려가고 성장하는 재미를 느낀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남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나면 내 역량이 늘어나는 것에 만족하고 더 노력하게 되는데 이 역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며 알 수 없는 것이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면 순간이 두려워진다. 그리고 도전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즐거움을 누릴 기회조차 빼앗기는 것이다. 주변 어른이 이야기해 주면서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게 격려하면 좋을 텐데 경쟁사회에서 살면서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기는 것,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 나 역시 몸치라고 매스게임할 때 가장 뒤에 서게 했던 선생님 때문에 춤추면서 움직임을 즐거움을 덮어놓고 지냈다. 두려웠다.  


  그러나 인생 별거 없다. 승패가 순간의 기쁨을 좌우할 수 있지만 인생 전반적인 행복에 끼치는 영향은 적다. 잘하면 좋다. 이기면 좋다. 그런데 그것 역시 비교대상이 없다면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슬프다. 반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은 즐겁다. 조금 나아지는 모습을 깨닫는 것도,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그러기 위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남들이 그리고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를 조금씩 늘려갈 수 있다. 순간의 최선이 그런 마음을, 자세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에 난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고 부르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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