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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08. 2023

스승은 없는 스승의 날

진심으로 스승을 기념한다면 5월이 아니어야 한다.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촌지나 선물을 받는 날이라는 오명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부모도 교사도 눈치싸움을 하는 날이었다. 무엇을 혹은 어느 정도의 금액에 해당하는 선물을 해야 하는지, 꽃은 몇 송이로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었다면 교사는 어떻게 거절해야 부모와 아이의 마음이 상하지 않는지 혹은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종이로 예쁘게 접어 온 카네이션은 받고, 한송이 생화 카네이션은 받지 않는 것도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얼마나 고민하고 골랐을까 하는 선물은 거절하기가 몇 배 미안했다. 미처 꽃이나 카드를 챙기지 못한 아이는 선생님이 어떻게 할 것인지 눈치 보았다. 마음 상하지 않게 한 명 한 명 달래고 이유를 설명해도 거절당한 꽃과 카드에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 역시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스승의 날을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무엇을 위한 날인가. 누구를 위한 날인가. 현 담임에게 선물을 보내지 않는다면 일 년 내내 아이를 맡기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받거나 받지 않거나 가져오는 선물과 카드가 부담스러운 교사 마음이 공존하는 날, 정말 교권 존중을 위한 것이며 은덕을 기리는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물론 유래를 살펴보면 여러 일을 걸쳐 결국 세종대왕 탄신일로 맞추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마음속에는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영란법이 생기고 나서 되려 마음이 편하다. 가져오는 모든 카드와 선물을 깔끔하게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아니, 일주일 전부터 어떤 선물이나 카드를 가져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는 아이의 평생 스승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부모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권장한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스승과 교사는 다르다. 선생은 많지만 스승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정해진 대학을 나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이 있는 사람 모두가 교사라면 스승은 깊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평생 의지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즉, 공부를 잘하면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지만 그 모두가 스승이 되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년 담임선생님께 편지 쓰는 행사는 정말 구닥다리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작년 선생님이 진짜 스승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데 무조건 고마워하라면서 작년 담임에게 편지 쓰라는 이 행사,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선물이 아닌데 카드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진심 없이는 편지한 줄로 써 내려가기 어려운 나에게는 여전히 싫을 수밖에 없는 행사이다. 이게 다 5월에 스승의 날이 있어서 그렇다. 스승의 날이 방학에 있다면 굳이 학교차원에서 행사할 필요도 없고 마음에도 없는 감사를 표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눈치를 보면서 현담임을 위해 뭔가를 준비한다. 몇 달 만났음에도 너무 좋은 담임에게는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겠지만 싫음에도 불구하고 담임이 삐칠까 두려워 행사를 준비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교사니까 무조건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치도록 싫은 담임도 있고 도저히 존경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담임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왜 억지로 눈치를 보면서 고맙다 해야 하는가.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전 담임에게 감사편지를 쓰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감사한 사람을 떠올리자고 한다. 부모님께 한번 더 써도 좋고, 영양사선생님, 사서선생님, 유치원선생님, 조부모님, 주변 어른들 중 감사한 분께 쓰라 한다. 스승은 자기 마음에 있는 사람으로 인생에 있어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지, 전 담임도 현 담임도 아니라고 한다. 아, 물론 그 속에는 나도 포함이다. 만나는 모든 아이가 나를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감안한다.


  스승의 날이 더 이상 싫지 않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졸업한 녀석들이 그쯤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에 설레고 기다려지는 날이기도 하다. 어떤 나잇대의 어떤 녀석들이 올까 하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제 각각 자기 수준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온다. 물을 좋아한다고 물 한 병을 사 오는 녀석도 있고 캔커피 또는 여럿이 돈을 모아서 카네이션 화분을 사 오기도 한다. 어떤 선물이거나 상관없이 빈 손으로 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보여 짠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그들로부터 나 역시 많은 것을 배운다. 누가 스승이냐 따지기 전에 그렇게 우리는 서로 배우는 시간을 갖고 마음을 나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만나는 아이들, 일 년 전에 만난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5월에는 서로 만나고 있으며 학교 안에 있으면 찾아오기 좋은 시점이나 그만큼 감사함을 강요하기도 쉽다. 어느 달에 있거나 기념일은 기념하기 마련이다. 방학중에 있다면 학교 측에서도 아이들도 부모도 기억은 하고 각자 정말 스승인 분을 찾아가게 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개개인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고 진심을 다해 감사함을 표할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 나에게도 그런 스승이 있어 5월이 되자마자 선물을 고민한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고 방향을 잡아주신 스승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감사를 표할 수 있어 좋다. 5월이 아니어도 같은 마음으로 준비할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좋은 스승을 한 분이라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 행운을 감사할 수 있는 날이 형식이 되지 않으려면, 스승의 날을 옮겨야 하지 않을까. 나이 먹는다고 어른이 아닌 것처럼 가르친다고 스승은 아니다.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 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승이 아님에도 5월이라는 혜택을 얻어 누구나 감사함을 받고 카네이션을 받는 틀에 박힌 스승의 날을 변경해야 한다. 스승이 아닌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하는 고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교권존중을 위한 기념일이라면 그게 언제이거나 상관이 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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