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
생명을 입양하는 문제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무소유라는 책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스님이 난초를 키우는데 수련을 위해 다른 절로 며칠간 다녀올 일이 생겼다. 그곳에 가서도 두고 온 난초걱정에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결국은 다시 난초가 있는 절로 되돌아간다. 생명에 경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식물을 키우면서도 그런 마음이 생기는데 동물을 먹이고 키우는 일에 그런 마음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반려동물과 산다는 건 무려 15-20년간이나 이런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엔 처음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할 때에 그 선택의 무게에 상응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예뻐서, 귀여워서, 외로워서, 아이의 정서발달에 좋다니까'라는 단편적인 이유로 반려생활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반대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반려인구는 전체 가구 중 25.4%인 602만 가구라고 한다. 또한 매년 발생하는 유기·유실 동물 수는 2017년 이후 약 10만 마리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반려동물의 양육포기·파양의 사유를 조사한 결과 ‘물건 훼손, 짖음 등 동물의 행동문제’가 27.8%로 가장 많았고,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소모’ 한다는 사유가 6.2%로 뒤를 이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펫숍에서 반려생활의 책임과 의무보다는 이 동물의 가격이 얼마인지만을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개, 고양이의 평균수명은 15-20년 정도이다. 15-20년 동안 처음의 귀여운 모습으로 있을 수는 없다. 이런 시기는 찰나와 같이 지나고, 급격히 몸집이 커지고 세상을 배우며 성장하는 소위 개춘기의 시기가 금방 도래한다. 이 시기는 실질적으로는 생후 1-2년 정도면 지나가는데 체감상으로는 엄청나게 긴 시간으로 느껴질 만큼 반려인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동물의 행동문제’과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소모’ 하다는 이유로 양육을 포기하는 것도 주로 이 시기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 평화의 시기가 온다. 하지만 이들의 수명은 사람에 비해 덧없이 짧기 때문에 금세 노년기가 다가온다. 노화로 인한 질병으로 인해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반려인구의 약 70%가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 모든 생명은 이러한 생로병사의 순리 안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반려가족을 들이는 데 있어서 이 당연한 순리를 망각하는 것 같다.
또한 반려생활은 식사, 배변, 산책, 목욕을 기본으로 함께 공존하는 삶을 위해서는 반려동물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해하고, 반려동물을 교육해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털관리가 필요한 동물이라면 미용실도 이용해야 하고, 집을 장기간 비운다면 호텔링도 맡겨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게 한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결정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깜순이와 나의 첫 만남은 깜순이가 2개월 즈음되었을 때였다. 깜순이는 지인이 선물 받아 키우게 된 강아지였다. 나는 원체 동물을 좋아해서 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그의 집에 방문했었다. 깜순이는 손바닥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 작고 까맣고 활력이 넘치는 강아지였다. 깜순이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깜순이 나중에 새끼 낳으면 꼭 저 한 마리 분양해 주세요."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에게 더 이상 깜순이를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지인은 깜순이 분양처로 가장 먼저 내가 떠올랐다며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나는 수입원이 없는 학생이었고, 앞으로 미래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결심이 쉽지 않았다. 내가 주저하자 지인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깜순이를 키울 수 없는 이유를 줄줄이 나열하며 나를 설득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료정도는 먹여 키울 수 있지 않겠어?'라는 마음으로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때 내 머릿속에 깜순이는 처음 만났던 손바닥보다 조금 큰 앙증맞은 모습의 아이였다.
그리고 며칠 뒤, 예상과 다르게 깜순이의 입양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깜순이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한 동안 지인에게도 급한 용무가 생겨서 퇴원을 시키러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인은 깜순이의 퇴원을 내게 부탁하며 이렇게 된 김에 아예 데려가 키우라고 했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병원에서 퇴원을 기다리고 있을 깜순이가 걱정되어 일단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몇 개월사이 누더기 같은 몰골이 되어 뒷다리에는 붕대를 친친 감은 깜순이가 애처롭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퇴원수속을 밟는 동안 깜순이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병원문만 바라보며 낑낑거렸다.
퇴원 후 돌아온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되는대로 밥그릇에 물을 담아 바닥에 두었다. 깜순이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고 다녔다. 지인과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연락이 닿아 일단 기존에 깜순이가 쓰던 용품들을 전달받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된 반려생활이었지만, 그날 밤 깜순이의 까맣고 맑은 눈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떻게든 너의 남은 시간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