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내 생애 가장 따뜻했던 생일날

by 채작가

어린 시절, 예쁜 초대장을 돌리며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교실 가득 왁자지껄한 축하 속에 주인공이 되던 친구들, 그 풍경은 나에게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은 엄마를 조르고 졸라 생일도 아닌 날에 친구들을 초대해 '가짜 생일 파티'를 연 적도 있었다. 1월이라는 나의 생일은 늘 그런 식이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엔 방학이라 소식을 전하기 어려웠고, 머리가 조금 굵어진 뒤에도 새 학년을 준비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나의 생일은 늘 친구들의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곤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겨울방학, 그해 생일 아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떴을 때, 혹시나 하며 열어본 휴대폰에는 축하 메시지 한 통 와 있지 않았다. "그래, 늘 이랬으니까." 스스로를 다독이며 서운함을 누르려했지만, 텅 빈 화면을 마주한 마음 한구석에는 쓸쓸한 찬바람이 불었다. 겨울 해는 야속하게도 짧아, 별일 없는 하루와 함께 나의 생일도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반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정적을 깨고 울린 초인종 소리에 무심코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문밖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조그만 케이크 위에 흔들리는 촛불, 그리고 서툴게 포장된 작은 선물들, 복도 가득 울려 퍼지는 친구들의 생일 축하 노래에 참았던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하루 종일 침묵했던 메신저는 나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한 친구들의 다정한 모의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속상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친구들이 가져온 온기가 가득 차올랐다. 달콤한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온 집안을 채웠던 웃음소리는 겨울의 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돌아보면, 삶이 우리를 지치게 할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대단한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그 외로운 순간, 문을 열자마자 마주했던 친구들의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비밀을 꾸미고, 추운 겨울바람을 뚫고 달려와 준 마음, 그 기억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따뜻한 불빛처럼 남아 있다.
​세상은 가끔 춥고 고독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준 작은 기억들을 땔감 삼아 인생이라는 긴 겨울을 지나간다. 친구들과 나누었던 그날의 온기는 여전히 내 삶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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