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생존자

by 채작가

우리가 자라던 시절의 부모님을 돌아보면 대체로 미숙했다. 그들이 자라온 가정환경과 그들이 꾸려야 하는 가정환경 사이에 간극은 컸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그들은 무척 어렸고, 무지했다. 그런 그들이 가정을 꾸리고 책임지기 위해서는 다소 폭력적인 방법이 통용되는 시대였다. 사회적으로 인권에 대한 개념조차 희미하다 보니 아동인권에 대한 인식은 전무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훈육과 체벌, 폭력이 뒤섞인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 시대였음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남편의 어린 시절은 유독 혹독했다. 아버지는 가정폭력이 심하셨고, 어머니는 결국 폭력을 피해 어린아이들을 남겨둔 채 집을 나가셨다. 가정에 무관심하셨던 아버지는 남겨진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고 아이들은 친척집을 전전하거나 아버지가 데려온 여자들의 손에 맡겨졌다. 어린아이들은 그 어디에도 정상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 한 채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어 방임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야말로 생존이었다.

상담 선생님이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나의 어린 시절 또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에도 부재중이었고, 내 인생의 대소사에 늘 부재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생계를 책임지지도 않아 어머니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존재에 대한 기억도 없이 조부모님과 친척들의 손에 자라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두 내게 잘해주셨지만 어린 시절에 떠오르는 한 장면은 늦은 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얼굴조차 모르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숨죽여 울던 모습이다. 다행히도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어머니가 나를 데리러 오셨다. 이모와 함께 온 어머니를 처음 본 나는 단박에 누가 엄마인지 못 알아보고 상상 속 어머니의 이미지에 가까웠던 이모에게 달려가 안겼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아버지는 여전히 자주 부재하셨지만 내게도 부모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 평범해졌다고 생각하며 성장했다.

상담 선생님은 우리 부부에게 '트라우마의 생존자'라는 칭호를 주셨다. 누구나 불우함이 있는 시대였음에도 유독 더 불우했던 시절을 경험한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자라 낸 우리를 칭찬한다고 하셨다. 트라우마는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질병, 신체적 위협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뒤 생기는 심리적 외상을 의미한다. 사람마다 동일한 경험을 하더라도 느끼는 것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한 트라우마라는 건 죽음에 가까운 위협이나 공포를 겪고 유사한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어쩌면 조금은 병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나의 전반적인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대체로 소소한 즐거움들로 채워진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트라우마에서 생존해 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나 또한 부모에게서 방임되었던 그 어린아이를 애써 외면하려 하는 것 자체가, 내가 콤플렉스라고 치부하며 덮어두려 했던 것들이 사실은 트라우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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