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제재 2부, 무너진 저널리즘과 악인전

by 진원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기사를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유튜브 채널이 화두에 올랐다. 유튜브 영상으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하나하나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이버렉카 채널을 옹호하는 자와 비판하는 자, 그렇게 사적 제재에 대한 논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조금 더 깊숙히 알기 위해선 우선 이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에 대해 알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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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 여중생에게 가해진 가혹한 집단 성폭행. 무려 44명의 남자 고등학생 가해자들이 합심하여 한 여중생에게 강력 범죄들을 행한 것이다. 폭행, 금품 갈취, 강간, 불법 촬영 등의 범죄에 노출되어 버린 여중생 A 양. 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공권력인 경찰 수사가 그녀의 고통을 헤아려 줬어야 했지만,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낳아버렸다. 사건이 알려지면 기자들이 찾아와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힐 것이기에 비공개 수사를 요청했지만, 사건의 크기가 키워지면 키워질수록 경찰에게는 승진의 기회가 생기기에 경찰은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행위를 저질러 버린다. 그렇게 원치않는 큰 관심을 받게 된 A 양. 심지어 당시 밀양 시민 중 64%가 이 사건의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다는 뒤틀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경찰들까지 수사 과정에서 A 양에게 "왜 밀양의 물을 흐리냐?"와 같은 망언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말은 다 한 셈이다.


A 양을 버리고 살던 아버지는 이 사건을 듣고 합의금을 챙기기 위해 다시 찾아왔고, 그렇게 강압에 못 이겨 몇몇과 합의까지 하게 되었다. 검찰에서는 기소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렇게 형사 처벌을 받은 이는 44명의 가해자 중 0명. 국가에서조차 버림을 받은 셈이다. 그렇게 이 사건은 그저 가슴 답답한 사건으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2024년 6월, 아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던 가해자들의 신상을 모두 공개해버리겠다는 채널이 나타난 것이다. 그 채널이 바로 맨 위에서 언급한 채널, '나락보관소'. 밀양 사건 판 디지털 교도소였던 이 채널은 사람들에게 대부분 환영받았다. 물론 비판의 여론도 몇몇 있었지만, 국가에서 처벌을 하지 않았던 대표적인 사건인 밀양 사건을 대신 처벌하겠다는 채널의 주인을 대부분 각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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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사적 제재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다시 발현되었다. 가해자의 신상이 아닌 무고한 시민의 신상을 퍼트려 그 시민이 운영하는 가게의 별점이 테러당하고, 무차별 인신공격을 받게 놔둔 것이다. 또한 피해자에게 허락조차 구하지 않고, 수익까지 창출한 것이 밝혀지며 논란이 되었다. 모든 것이 거짓말로 점철된 렉카 채널, 결국 밀양 사건의 영상을 모두 내리고 활동을 중단하였다.


나락보관소의 가해자 신상 공개를 통해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이슈가 되었지만 나락보관소에 의해 그 의의가 묻혀버리는 참으로 기이한 상황이 펼쳐지고, 언론은 이 사이버렉카를 집중해서 비난했다. 그 사이 다른 유튜버가 사건 판결문을 피해자 측과 상의 없이 공개했고 피해자 측은 유튜버에게 영상을 내려 달라며 계속해서 요청했지만 계속 무시하고 있다며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호소하였다. 결국 이슈 유튜버와 언론과의 싸움이 이어지며 사건의 본질이 뒤바뀌고 말았다. 심지어 이 사건의 최우선으로 생각되어야 할 피해자에게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나대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는 악플을 단 네티즌도 나오며 사건의 본질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무작정 사적 제재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언론, 사적 제재의 발생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공적 제재만을 믿으라는 사법부, 정의를 외치지만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2차 가해를 불러오며 이슈 만을 쫓는 유튜버, 자극만을 찾으며 정보를 가려 듣지 못하는 네티즌. 결국 피해자를 위해주는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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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취재하며 연락이 닿았었던 당시의 피해자, 현재는 여러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해 힘쓰고 있는 '김진주 작가'와 짧은 통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20년이 지나도 발전되지 않는 피해자에 대한 시선이 궁금했다. 그녀는 "나락보관소가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할 때 가장 우려가 되었던 것은 피해자의 상태였다. 피해자가 가해자 44인의 신상을 크로스 체크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많이 경악스러웠다. 현재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피해자는 말 한마디에 무너지기 쉬운 상태인데 본인의 사익을 위해 피해자를 이용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라며 나락보관소를 비판했다.


밀양 성폭행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경쟁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들이 한 유튜버가 피해자와 연락을 하고 있다는 한 마디에 집중하여 여러 논란을 만들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많이 의아했다." 라고 밝혔으며 또한 사적 제재에 대해선 "결국 사적 제재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해결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적 제재란 표현을 쓰기만 하면 그 이상의 해결책보단 사적 제재를 한 대상에 대해 비판만 하니 그 시점이 아쉽다. 또한 공적 제재의 가이드라인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한 번씩은 자신이 진정 피해자를 위해 하는 일이 맞는지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피해자는 복수와 같은 일이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벌하기 위해 일을 계속하면 언젠간 변질되고 어느 누구에게도 좋지 못한 상황이 된다." 라는 입장을 밝혔다. 네티즌이 가해자를 비판하는 이유에 대해서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피해자를 위해 가해자를 비판하는 것인지, 그저 자극만을 좇아 가해자를 비판하는 것인지. 해당 사건의 피해자는 사건이 다시 세상의 화두로 오르자 애써 잊으려 하던 사건이 다시 들춰졌기에 더욱 힘들어했다고 한다. 한 강력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신경을 써야하는 것은 피해자의 상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년은 무너진 저널리즘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난 한 해였다. 도파민에 절여진 사회, 잠시 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을 감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길 바란다.


당시 작성했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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