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변화들.
2025년 12월 9일, 금주 90일째.
술 없는 삶에 조금씩 몸이 적응해 가면서,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변화들을 발견한다.
가끔 들르던 카페는 이제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되었고,
예전엔 술잔을 부딪히며 떠들썩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면
지금은 일기장에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고요하게 하루를 닫는다.
가장 신기한 건 180도 바뀐 입맛이다.
예전에는 늘 술을 중심에 두고 음식이 따라왔다.
홍어삼합엔 막걸리, 족발엔 소주, 치킨엔 맥주,
소고기엔 레드와인이 자연스레 함께였다.
좋아하던 음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그 모든 것들이 전혀 끌리지 않는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식사에 대한 태도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술과 사람, 그리고 음식이 하루의 가장 큰 비중이었다면
지금은 가볍게, 빠르게 허기를 채우는 식사가
하루 중 가장 작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내 끼니는 대부분 햄버거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것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내 변화를 신기해하면서도 어색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미식가이자 애주가'로 기억되었으니까.
유튜브나 TV에서 맛있다고 소개한 집은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직접 찾아가야 직성이 풀렸고,
내 지도 어플에는 맛집 ★표시가 온통 가득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이렇게 농담을 던졌다.
"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너 그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니냐? 하하하"
나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에이, 이러다 또 예전으로 돌아가겠지. 내가 뭐 어디 가겠냐~"
하지만 마음속 대답은 전혀 달랐다.
'아니야. 예전의 나는 이미 죽었어.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과거의 나를 하나씩 지르밟고 나아가고 있는 중이야.'
금주 3개월 동안 가장 크게 변한 건 인간관계다.
늘 술약속으로 불타던 내 휴대폰은 오랜만에 긴 휴가를 즐기고 있다.
내 금주 소식을 들은 술친구들의 반응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 이해도 못하고 공감도 못하는 사람
2.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못하는 사람
3. 이해도 해주고 응원도 해주는 사람
가장 많은 유형은 두 번째,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하지 못하는 부류다.
그들이 가장 흔히 말하는 문장은 이렇다.
“네가 술을 많이 마셨던 건 알겠는데 적당히 마시면 되지, 왜 극단적으로 끊는 거야?”
이 말을 들을 때면 마음 한편이 아주 잠깐 흔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조용히 주문을 외운다.
'세상엔 술이 약이 되는 사람도 있고, 독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는 술이 독인 사람이다.
나에게 술은 독극물이고, 술을 마시는 순간 내 삶은 파멸로 향한다.'
나는 술이 무조건 적으로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좋은 윤활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나에게 술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고 관찰한 끝에 깨달았을 뿐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술은 독이고, 삶을 좀먹는 그림자였다.
요즘 조용해진 휴대폰, 짧아진 저녁시간,
차분해진 하루의 리듬들...
이 변화들이 가져온 만족감은
다른 부작용들을 모두 덮을 만큼 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변화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처음 있었어야 할 제자리로
천천히 되돌아가는 중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