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식
2005년 7월 1일 오전 11시.
강원도 정선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6개월 만에 만나는 아빠는 배웅을 나와 계셨다.
반가웠지만 서로 표현에 서툰 성격 탓에
머쓱한 인사만 나눈 뒤 곧바로 래프팅 사업장으로 향했다.
아빠는 오대천 깊숙한 곳에 민박집을 임대해
여름 시즌 동안 래프팅, 식당, 숙박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푸르른 숲 사이로 오대천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며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안정감을 느끼다 보니
어느새 민박집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에는 식당 일을 맡은 아주머니와 동업자 아저씨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래프팅 자격증 시험까지는 단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
아빠는 가이드를 할 만한 친구가 있으면 섭외해 달라고 했다.
나는 정신없이 수소문해 고향의 친한 친구에게 연락했고
다행히 빠르게 합류할 수 있었다.
이틀 뒤 아침.
나와 친구는 자격증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모든 일정은 떠밀리듯 빠르게 진행됐다.
운동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해병대 출신, 수영선수 출신, 육상부 출신.
대부분 운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잠시 육상부 활동을 했지만
그 이후로는 고등학교까지 음악을 전공해 왔다.
이곳은 나에게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때 단상 위로 조교 한 명이 올라왔다.
"저는 앞으로 3박 4일 동안 여러분의 훈련 조교를 맡게 된 ㅇㅇㅇ입니다.
마지막까지 낙오 없이 모두 완수하시기 바랍니다!”
'3박 4일? 훈련?!'
간단한 수영 테스트와 시험 정도로 생각하고 왔던 나는
그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시험장은 3박 4일간 50여 명과 합숙하며
마지막 날에는 래프팅 가이드 시험까지 치러야 하는
고강도 훈련 코스였다.
짐을 풀자마자 단체 구보가 시작됐다.
다부진 체격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175cm, 58kg이던 나는 눈에 띄는 존재였다.
구보는 끝없이 이어졌고
그들의 호흡을 따라가기엔 내 체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부터 낙오하면 얼마나 비웃을까..'
'초등학교 때 육상부였잖아. 할 수 있어!'
정신력으로 버티며
끝내 마지막까지 구보를 완수했다.
패들 젓는 법, 배 위에서 인명 구조하는 법,
구명조끼와 안전모 착용법 등
하루 종일 이어진 훈련이 끝나자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다.
각자 배정된 방에 누워 잠자리에 들었다.
내 옆자리에는 전역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해병대 출신 형이 누워 있었다.
군복을 입고 올 만큼 자부심이 강해 보였다.
다음 날 새벽 6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기상했다.
스트레칭 후 아침 구보가 시작됐다.
숙소에서 훈련장까지 약 1km 거리.
6명씩 한 팀이 되어 래프팅 보트를 머리 위에 이고 이동해야 했다.
우리 팀에는 그 해병대 형이 있었다.
그가 자신 있게 말했다.
"군대에서 많이 해본 훈련입니다. 저만 믿으세요!"
각자의 위치를 정해줬고 나는 가운데 왼쪽에 섰다.
"하나! 둘! 셋! 넷!"
구호에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꼴찌 팀에게는 가혹한 얼차려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모두가 이를 악물었다.
처음엔 버틸 만하던 배가
시간이 지날수록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팀원들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고
땀으로 흠뻑 젖어갔다.
다행히 꼴찌는 면했다.
숨을 헐떡이던 해병대 형이 말했다.
"해병대 훈련이랑 비슷하네요... 헉헉~"
고된 훈련 속에서
나도 어느새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마지막 시험날.
보통 열 명 중 여덟 명은 합격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탈락자 둘에 포함될까 불안했다.
배운 대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 시험에 임했고
간신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받은 래프팅 가이드 자격증은
내 인생 첫 자격증이자
스스로에 대한 작은 증표였다.
하얗던 피부는 구릿빛으로 그을렸고
나는 비로소 래프팅 가이드가 되었다.
다음 날부터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첫 손님은 보험회사 단체 관광을 온 아주머니들이었다.
"오늘 여러분의 안전과 래프팅을 책임질 가이드 ㅇㅇㅇ입니다.
출발 전에 간단한 스트레칭과 안전 교육을 하겠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교육을 시작했고 서툴렀지만 배운 대로 해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빠의 뿌듯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물살을 타고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나도 손님들과 함께 래프팅을 즐기고 있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 아주머니들은 자식처럼 이것저것 물어왔다.
"가이드는 다 몸이 좋은데, 너는 좀 왜소하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어?"
"여기 맛집은 어디야?"
농담을 섞어가며 대답하는 나 자신을 보며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즐겁다는 걸 처음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날 내린 비로 오대천의 물살은 평소보다 거셌다.
나는 그 빠른 물살이 오히려 즐거웠고
4인 가족을 태우고 출발했다.
흥분한 나머지 방심했고
배 앞부분이 바위에 걸려 멈췄다.
그 순간 스친 생각.
'안전 교육 때 이 상황을 빼먹었어!'
배가 바위 위에 걸리면
조금만 균형이 무너져도 뒤집힐 수 있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그러나 밀려드는 물살에 한 사람이 자리를 옮기는 순간
배는 그대로 뒤집혔다.
가족들은 급류에 휩쓸렸고
바위 많은 오대천에서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나는 뒤집힌 배 안에 갇혔다가 온 힘을 다해 빠져나와
중학생 아이를 강변으로 끌어냈다.
다행히 나머지 가족들은 짧은 급류를 지나
잔잔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심장은 멈출 듯 뛰었고
도착지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손님들은 그 일을
그저 재미있는 해프닝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나는 강가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물을 바라봤다.
즐겁기만 했던 이 일이
처음으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날 밤, 포장마차에서
친구에게 하루를 털어놓았다.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오늘은 물살이 셌잖아."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말했다.
"큰일 날 뻔했네.
오대천은 매년 인명사고가 나는 곳이야.
항상 조심해레이~."
그 순간,
래프팅 가이드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맡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날은 처음으로 직업의식을 느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