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이자 부작용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by 중독작가

1997년,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나는 이유 없이 몸이 앞서 나가는 아이였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말 한마디로
나는 어느 날 육상부로 불려 나갔다.
선택이라기보다는 착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이른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학교 앞 산을 뛰어올랐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파고들 때마다
숨은 가빠졌고 다리는 무거워졌다.
산을 내려오면 바로 운동장.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섯 바퀴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체력 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이 끝나면
코치 선생님 손에서 하나씩 나눠주던 아이스크림.
녹아내리는 달콤함은
다음 날 새벽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보상이자
아이였던 나의 가장 현실적인 원동력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운동장으로 모였다.
각자 정해진 주종목 훈련.
내 종목은 800미터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운동장을 돌며
기록이 조금씩 단축되는 걸 확인할 때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수록
오히려 살아 있다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나는 그 가쁜 숨마저도 좋아했다.

훈련이 끝나면
땀에 젖은 체육복을 벗고
도복으로 갈아입은 뒤 태권도장으로 향했다.
운동과 춤을 좋아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내 언어이자 표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척시 육상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운동회에서 느끼던 긴장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트랙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늘 학교 안에서는
달리기 잘하는 아이로 주목받던 내가
그날만큼은
여러 학교에서 선발된 선수들 사이에 섞여
그저 평범한 한 명일 뿐이었다.

예선.
8명 중 간신히 2등.
결승 진출이라는 결과보다
내 안에서 무너지는 무언가가 더 크게 느껴졌다.

'달리기라면 자신 있다'


는 생각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결승전.

이미 기가 한껏 죽은 채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다리는 무거웠고
호흡은 흐트러졌으며
트랙은 끝없이 길어 보였다.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전광판에 찍힌 숫자, 6등.
8명 중 6등.

그날, 코치의 시선은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만 머물렀고

나는 열등감과 함께

오래 품고 있던 자만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나의 장래희망에서

'육상선수'


라는 단어는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실은 공백이 되지 않았다.
운동에 쏟아붓던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춤이었다.

덕분에 학예회에서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다.
나는 친구들을 모았다.
그리고 당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던
H.O.T의 (We Are The Future).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되감고, 멈추고, 다시 보고
몸에 새기듯 안무를 익혔다.

학예회 날.
무대 위 조명이 켜지고
준비한 춤이 끝났을 때
쏟아지던 박수와 함성.
학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그 소리는
지금도 귀에 남아 있을 만큼 강렬한 희열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단순히
춤을 추는 행위 자체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 인정, 관심.


나는 환경과 사람에 크게 영향을 받는 아이였다.

그 덕분에 쉽게 몰입하고 빠르게 빛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관심이 사라지면 중심도 함께 흔들렸다.

축복이자 부작용을 함께 지닌 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