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선물
금주 99일 차
새벽 5시로 맞춰둔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오르기 위해 어제저녁 제주도에 도착했다.
처음 사용해 보는 등산 장비들(아이젠, 등산 스틱, 방한 장갑)을 꼼꼼히 챙기고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한라산 등반은 처음이었기에 비교적 난이도가 쉬운 성판악 코스를 선택했다.
제주시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성판악 입구까지는 환승 없이 약 30분 정도가 걸렸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라 등산로는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고,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랜턴을 비추며 앞서 가는 사람의 등을 놓칠세라 급히 뒤를 쫓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라산 등산이 시작됐다.
겨울의 한라산은 미끄러운 빙판길과 울퉁불퉁 솟아 있는 화강암들로 가득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게다가 등산 스틱과 방한 장갑 모두 처음 사용해 보는 터라 손은 어색했고,
스틱은 바위틈에 끼어 몇 번이나 놓칠 뻔했다.
하필 그때 알레르기 비염 증상까지 심해졌다.
물콧물이 줄줄 흐르는데 숨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양손에는 스틱을 쥔 채 장갑 낀 손으로 코를 훔치다 보니
코끝이 쓸려 따끔따끔 아파왔다.
한라산 등산을 처음 계획했을 때 상상했던 풍경은
상쾌한 새벽 공기를 음미하며 여유롭게 한 걸음씩 오르고,
설산의 풍경을 즐기며 사색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불편함을 잔뜩 떠안은 채,
앞이 캄캄한 등산이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불편함에 적응해 가며 앞사람의 등만 보고 걷는 동안
콧물은 멈추지 않았고, 거기에 재채기까지 더해져 정신이 없었다.
내 뒤를 따르던 사람은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괜히 와서 무슨 고생이야, 이게...'
후회가 마음속을 가득 채운 채 툴툴거리며 걷다 보니
서서히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랜턴에 의지하지 않고 내 속도에 맞춰 등산을 할 수 있었다.
불편하기만 했던 스틱과 장갑은 어느새 몸의 일부가 되었고,
미끄럽고 울퉁불퉁했던 길을 지나
야자매트가 깔린 평탄한 길을 걷는 동안
불편함 들은 하나씩 툭툭 털려 나갔다.
무거운 불편함들을 내려놓자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그 순간 또 다른 후회가 밀려왔다.
'40년을 살면서 왜 이제야 이곳에 왔을까?'
돌이켜보면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은 오로지 '술'이었다.
다른 행복들은 술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채 산을 오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아이젠(미끄럼 방지 장비)을 착용하고 있었다.
나 역시 준비해 온 아이젠을 꺼내 처음으로 착용했다.
빙판길과 눈길을 밟으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됐다.
"포사각~ 포사각~"
아이젠이 눈과 얼음을 밟는 소리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때까지 듣고 있던 음악은 이어폰과 함께 가방에 넣어두고
온전히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
퍼덕이는 까마귀의 날갯짓,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내 숨소리,
포사각거리는 발자국 소리.
모든 소리가 섬세하고 달콤하게 내 귀를 자극했다.
한라산에 조금씩 스며들 즈음
속밭대피소에 도착했다.
많은 등산객들이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도 빈자리에 앉아 준비해 온 에너지바를 먹으며
잠시 쉬어갔다.
풍경이 주는 단맛과 고됨이 주는 고소함이 더해진 에너지바는
내 인생 1등 에너지바로 기억될 것 같다.
달콤한 휴식 후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산을 오를수록 근심과 걱정은 사라졌고,
의식하지 않아도 두 발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흘러갔다.
무아지경으로 산을 오르던 중
내 마음은 '후회감'을 지나 '안도감'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라도 한라산에 와서 다행이다.'
'금주하지 않았다면 평생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잖아.'
차갑고 불편했던 후회는
따뜻하고 편안한 안도감으로 변해갔다.
여유를 되찾은 채 한참을 오르다
마지막 대피소인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마지막 휴식과 식사를 하고 정상으로 향한다.
준비해 온 컵라면, 보온병의 따뜻한 물, 그리고 김밥.
먹어본 사람만 아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맛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냥 '미친 맛'이다.
미치기 일보직전 정신 차리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화장실도 한번 들리고 정상을 향해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 옆으로
제주도의 풍경과 윤슬이 번지는 바다가 펼쳐졌고,
날씨까지 완벽했던 그날
의식하지 않은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우와~~"
하루 종일 굶은 뒤
1시간 줄 서서 기다린 소고기집에서
빈속에 시원한 소맥을 원샷하고
잘 익은 소고기 한 점을 먹을 때 나오던 감탄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순간이었다.
잠시 앉아 그 장면을 충분히 음미한 뒤 고개를 들자
백록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곳을 향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한걸음씩 내디뎠다.
분명 코앞인데도
가도 가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등산, 화장실, 성공은
거의 다 왔을 때 가장 힘든 법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럴 때 나만의 방법이 있다.
정상을 보지 않고
땅만 보며 한 걸음씩 걷는 것이다.
정상을 바라보면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인생에도 적용해보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정상이 목표라면 한 걸음은 하루라 생각하고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며 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 본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정상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었다.
백록담은 줄을 서지 않아도 바로 볼 수 있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정상표지석 앞에서 인증샷은 남기고 싶어 줄에 합류했다.
기다리는 동안
내 바로 뒤에는 혼자 온 듯한 외국인 남자가 서 있었다.
요즘 영어 공부도 하고 있던 터라
겸사겸사 말을 걸었다.
"Are you traveling alone?"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음이 문제인가 싶어
조금 더 단순하게 말했다.
"Travel alone?"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했다.
"네, 혼자 등산 왔어요. 혼자 오셨어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오? 한국말 잘하시네요. 한국에 사세요?"
"네, 7년째 살고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아일랜드 출신의 92년생, 원숭이띠
음악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고
서로의 음악과 영상을 공유하며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는 한라산이 일곱 번째라고 했다.
건강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에 살면서 한라산에 처음 와본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줄은 끝나 있었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백록담을 배경으로 셀카도 남긴 뒤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는 서울에 살고 있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등산과 러닝을 좋아한다고 했다.
언젠가 강화도 마니산에 함께 오르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의 길로 내려왔다.
다시 혼자가 되어
백록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내일이면 금주 100일째.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지고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침묵 속에서 백록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후회감'과 '안도감'을 지나
'기대감'이라는 정상에 서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백록담처럼 아름다울 내 인생에 대한 기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