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
2025년은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고, 친형은 결혼을 했다.
우울증이 점점 깊어지면서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 끝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삶은 무너져 갔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여행을 떠돌았지만
마음속 공허함과 불안은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본질적인 문제를 마주한 끝에 금주를 결심했고,
오늘은 그로부터 111일째 되는 날이자
2025년의 마지막을 앞둔 날이다.
별일 없이 지낸 것 같았지만
되돌아보니 참 많은 일과 변화가 있었다.
죽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을 것임을 기억하라.'
아버지의 숨이 멈추던 마지막 순간,
장례식을 치르고 입관식에서 만졌던
차가운 손과 얼굴,
화장을 마치고 한 줌의 재가 된 아버지를
품에 안고 고향으로 내려가
직접 땅에 묻는 모든 과정을 지나며
죽음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죽음이 그저 글자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현실이 되었다.
잠시 삶의 허무함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이제 그것은 오히려
나를 명랑하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족
가족과 함께 살았던 기억이 워낙 짧고
아주 오래된 일이어서
'가족'이라는 단어는 늘 낯설고 어색했다.
형의 결혼식 날,
먼저 떠난 아버지의 빈 혼주석을
내가 대신 채웠다.
늘 혼자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나였기에
기뻐하는 형과 형수,
그리고 하객들 모습을 바라보며
비로소 나 역시
가족의 한 부분이라는 소속감을 느꼈다.
새해가 되면 조카가 태어난다는 소식은
희미했던 '가족'이라는 글씨를
내 가슴에 또렷하게 새겨주었다.
금주
올해는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나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고,
우울과 불안에 잠식된 나는 술에 의지해 버텼다.
술은 유일하고도 강력한 도피처였지만
그만큼 대가는 컸다.
술값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주사로 뒤틀린 인간관계,
숙취로 흘려보낸 시간들,
그리고 다음 날 밀려오는 불쾌하고 무거운 감정들.
가슴 한편이 곪아 썩어가는데
수술은 하지 않은 채
진통제만 계속 복용한 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성은 생겼고
진통제, 그러니까 술의 양은 끝없이 늘어만 갔다.
그와 함께 부작용은 내 삶을 처참히 무너뜨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넌 나 닮아서 술 마시면 인생 망하니까 절대 술 먹지 마~"
생전에 귀가 닳도록 들었던 말이다.
그날 이후,
녹아내릴 듯한 정신을 부여잡고 금주를 시작했다.
지옥 같던 첫 2주를 지나고 나자
조금씩 자존감이 회복되었고
건강한 습관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보람 있는 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렇게 한 해를 되돌아보며,
당시에는 모든 일이
커다란 사건처럼 느껴졌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일들은
누구나 겪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이었다.
그 중심에는 늘 술이 있었다.
세상은 늘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다만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일 뿐이다.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나답게 걸어갈 것이다.
혹시 술로 인해 삶이 버거운 분이 있다면,
새해에는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이 향하고 싶은 방향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선택들이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고,
스스로의 복이 되어 돌아올 테니까요.
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