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 현상

권태와 고통을 오가는 시계추

by 중독작가

2026년 1월 10일, 금주 119일 차.


약 네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꾸준한 운동 루틴을 만들며 체중을 10kg 감량했고,
술로 낭비하던 시간은 조금씩 자기 계발로 채워지고 있다.
굴곡이 심했던 감정기복은 한결 차분해졌고,
소소한 일상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

금주 100일을 채우는 동안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존감과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 시간을 쌓아왔다.
그 과정은 분명 나를 이전보다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00일을 넘긴 이후부터 서서히 다른 감정이 스며들었다.
요즘의 나는 매사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겹쳐 있다.
금주를 결심하던 순간의 단단했던 의지는 이제는 흐물거려
굳이 선택했던 이 결정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권태와 고통을 오가는 시계추’에 비유했다.
고통 쪽으로 치우쳐 있던 시계추가
이제는 권태의 방향으로 돌아온 듯하다.

금주 이전의 삶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나는 술을 끊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고통을 힘겹게 넘어서 찾아온 보상이 권태라면
앞으로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오랜 고민 끝에 내 안에 무의식적인 욕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술을 끊으면 인생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욕심,
몸이 건강해지면 매일 아침을 상쾌하게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욕심,
막연히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질 것이라는 욕심.

이 욕심들은
애초에 모두 충족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기대가 컸던 만큼
권태는 평온이 아니라 불쾌한 감정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권태는 반드시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감정의 파도가 잦아들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금주를 결심한 이유 또한
극단적인 감정기복에서 벗어나 이 평온함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평온에 익숙해지자
강한 즐거움에 대한 욕심이 다시 내 마음을 흔들었고,
그 욕심이 나를 스스로 괴롭혔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하나를 선택할 때 하나는 내려놓아야 한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같은 삶으로
25년을 살아왔다면,
남은 시간만큼은
잔잔하고 평온한 호수 같은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심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며,
내 선택이 틀리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살아가려 한다.

지금의 이 잔잔함이
비록 지루하게 느껴질지라도,
적어도 파도에 휩쓸리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