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날 사람이 없었다
태준이와 나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태준이의 불량한 행동들은
그 시절의 나에게 두려움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등학교 동창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태준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나쁜 짓으로 유명했다고.
담배는 기본이었고
술도 자주 마셨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궁금한 건 끝까지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결국 나는 직접 물어봤다.
"니 초등학생 때부터 술 마셨다는데 진짜나?"
"응 5학년때부터 마셨지. 왜? 니도 마시고 싶나?"
"어? 아.. 니 그냥 신기해서.."
"오늘 학교 끝나고 형들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
"그래!"
나는 그 형들이 누군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태준이는 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데려가는 아이였고,
그건 언제나 묘한 기대감을 동반했다.
그날도 방과 후가 이상하게 기다려졌다.
학교를 마치고
태준이는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 뒤편 놀이터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했고
중2쯤 되어 보이는 형들 몇 명이
둥글게 모여 종이컵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이미 많이 취해
고성을 지르며 비틀거렸고,
다른 형들은 눈이 풀린 채
태준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태준이는 형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더니
자연스럽게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아무렇지도 않게 원샷을 했다.
"제가 한잔 올릴게요."
나보다 한 학년 위일 뿐인데
마치 큰 어른을 대하듯 말하는 태준이의 태도는
신기하면서도 어딘가 낯설었다.
태준이는 형들에게 나를 간단히 소개했고
자연스럽게 내 손에도 종이컵이 쥐어졌다.
"니 술 먹어봤나?"
"아.. 아니요 처음 먹는데요.."
"그래? 그럼 무조건 원샷이야 한잔해~!"
종이컵에는 소주가 가득 찼고
나는 그 시선과 분위기에 떠밀리듯
컵을 비웠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과 함께
소주 특유의 냄새와 쓴맛이 밀려왔다.
울렁거림을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우~~ 웩"
형들은 깔깔대며 웃었고
그런 내 모습이 우스운지
콜라를 한 잔 따라주며 마시라고 했다.
그 시절,
우리의 안주는
소주 대병 하나와 콜라 1.5리터가 전부였다.
종이컵이 젖을 때까지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처음의 어지러움은 사라지고
대신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 찾아왔다.
몸은 붕 떠 있었고 이유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우리는 점점 목소리가 커졌고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에도 깔깔대며 웃어댔다.
어느새 밤 10시가 넘었고 형들은 하나둘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담배 냄새와 술 냄새를 없애려고
고려은단 껌을 두 개씩 나눠 씹고
책가방에서 꺼낸 향수를 마구 뿌려댔다.
나도 태준이의 향수를 빌려 뿌리고
껌을 씹으며 집으로 향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나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빠는 먼 곳에서 사업을 시작해
2주에 한 번쯤 집에 왔고,
엄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화투를 치러 다니다
늘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날도 썰렁한 집에는 사춘기가 한창이던 형이
말없이 나를 무뚜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술이 덜 깬 채 소파에 몸을 눕혔다.
천장은 빙글빙글 돌았고 오늘 있었던 사건들로 빠져들다
교복도 벗지 못한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