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따 쪼다 내삐래

스무 살 첫 막노동

by 중독작가

2005년 10월 스무 살 시절.

시멘트 가득 실은 트럭.jpg 시멘트 한가득 트럭

"띠리 띠리 띠리 띠리리~"

25톤 트럭의 후진 멜로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새벽을 연다.

시멘트 포대 40kg짜리가 산처럼 실린 트럭이
정교하게 주차를 마치면,
돌덩이 같은 포대를 저장고로 옮기는 일이 시작된다.

시간이 생명인 트럭 기사님의 눈치를 보며
우리는 최대한 빨리 짐을 비워야 한다.
성격 급한 기사님이 가끔 소리를 지른다.

“거 좀 빨리 좀 옮기쇼!”

그럴 때면 두 포대씩,
80kg을 어깨에 얹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참으며
정신력 하나로 버틴다.
쉬지 않고 한 시간을 버텨내다 보면
어느 순간 몸과 생각이 분리된다.
생각은 멈추라 말하는데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멘트 포대.jpg 시멘트 포대

겨우 주어진 10분 휴식.
믹스커피 한 잔, 담배 두 개비.
그렇게 숨을 돌리고 나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우리가 맡은 일은
물과 섞은 시멘트, 즉 콘크리트를
약해진 지반에 파이프로 주입해
땅을 단단히 다지는 일이었다.

팀원은 총 네 명.
아빠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 둘,
그리고 친구와 나.

콘크리트 기계에 시멘트와 물을 채우는 게
우리의 주 업무였다.

시멘트 섞는 기계.jpg 콘크리트 기계

당시 막노동 현장에서는
일본말이 작업 언어로 흔히 쓰였는데,
초반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일은 더 느려졌고 어르신들의 짜증은 더 커졌다.

가빠(천막), 야스리(줄), 구루마(손수레)...

이해 못 하면 다시 물어야 했고,
그러면 어르신들은 왜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짜증을 냈다.
그러면 나는 또 반항심에 말대꾸를 했다.
긴장과 예민함의 연속이었다.

한 달쯤 지나자

몸은 현장에 익숙해지고
귀는 작업 언어에 적응했다.
이제는 제법 쓸만한 인력이 되어 있었다.

그날도 늘 그렇듯 익숙한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 어르신 한 분이 소리쳤다.


"야! 저따 쪼다 내삐래!"


처음 듣는 말이었다.
도구를 가져오라는 말인가 싶어 어림짐작으로 물었다.


"네? 그게 뭔데요?"


어르신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다시 설명 없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따 쪼다 내삐래!"


그날따라 나도 참을 수 없었다.


"아저씨! 모르면 알려주면 되지 왜 자꾸 소리를 질러요!!"


현장이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어르신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다 쓴 시멘트 포대 더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 저따 쪼다 내삐래..."


그제야 이해가 됐다.


'저기에 주워다 내버려'


강원도 사투리였다.

순간 웃음이 터졌고 한동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르신은 기가 찬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작업이 끝난 후,
함바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제육볶음과
맥주글라스에 가득 따른 소주를 앞에 두고
우리는 그날의 해프닝을 안주 삼아 웃었다.
그날 이후 어르신과 나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목소리.


"저따 쪼다 내삐래."